사회과학

과학 혁명의 구조 서머리

beckett 2024. 4. 3.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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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이 글을 쓰기 이전 과학사가들의 성취는 과학적 활동의 경쟁 방식에서 벗어나 지속적인 지지자 집단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히 전례가 없는 일이었으며, 동시에 재정의된 실무자 그룹이 해결해야 할 모든 종류의 문제를 남겨두기에 충분히 개방적이었다. 이 두 가지 특성을 공유하는 성과를 앞으로는 '패러다임', 즉 '정상과학'과 밀접하게 관련된 용어라고 부르겠다. 공유된 패러다임을 기반으로 연구가 진행되는 남성은 과학적 탐구에 대해서도 동일한 규칙과 표준을 준수한다. 그러한 헌신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명백한 합의는 정상과학의 전제조건이다. 그러나 보다 추상적인 논의는 정상과학이나 작동 중인 패러다임의 사례에 대한 사전 노출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특히, 이러한 두 관련 개념은 패러다임 없이 또는 적어도 위에 언급된 것과 같이 명확하고 구속력이 없는 일종의 과학적 연구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명확해질 것이다. 패러다임과 그것이 허용하는 보다 난해한 유형의 연구를 획득하는 것은 특정 과학 분야의 발전이 성숙하다는 신호이다. 역사가가 관련 현상의 선택된 그룹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시간을 거슬러 추적한다면, 그는 물리 광학의 역사에서 여기에 예시된 패턴의 사소한 변형을 만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빛을 이렇게 특성화한 것은 불과 반세기도 되지 않는다. 플랑크, 아인슈타인 등이 금세기 초에 발견하기 전에 물리학 교과서에서는 빛이 횡파 운동이라고 가르쳤다. 이는 궁극적으로 19세기 초 Young과 Fresnel의 광학 저술에서 파생된 패러다임에 뿌리를 둔 개념이다. 파동 이론은 광학 과학의 거의 모든 실무자들이 처음으로 받아들인 것도 아니었다. 18세기 동안 이 분야의 패러다임은 빛이 물질적 미립자라고 가르친 뉴턴의 광학학에 의해 확립되었다. 아주 먼 옛날부터 17세기 말까지 빛의 본질에 대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단일한 견해는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경쟁하는 학파와 하위 학파가 많았고, 대부분은 에피쿠로스학파, 아리스토텔레스학파, 플라톤학 이론의 이런저런 변형을 옹호했다. 그 중에 디그마틱 관찰(Digmatic Observation)은 자체 이론으로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광학 현상의 특정 클러스터다. 다양한 시기에 이 모든 학파는 뉴턴이 물리 광학에 대해 거의 균일하게 받아들여지는 최초의 패러다임을 끌어낸 개념, 현상 및 기술의 본체에 상당한 공헌을 했다. 그러나 뉴턴 이전의 물리광학에 대한 연구를 조사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분야의 실무자가 과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활동의 최종 결과는 과학보다 못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관찰과 실험을 뒷받침하는 그의 선택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왜냐하면 모든 광학 작가들이 채택하고 설명해야 한다고 느꼈던 표준적인 방법이나 현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기간 동안 Hauksbee, Gray, Desaguliers, Du Fay, Nollett, Watson, Franklin 등과 같은 중요한 전기 실험가들만큼 전기의 본질에 대한 많은 견해가 있었다. 이는 당시의 모든 과학 연구를 안내했던 역학-미립자 철학의 다른 버전이다. 게다가, 모든 것은 실제 과학 이론, 즉 실험과 관찰을 통해 부분적으로 도출되었으며 연구에서 수행되는 추가 문제의 선택과 해석을 부분적으로 결정한 이론의 구성 요소였다. 그러나 모든 실험은 전기적이었고 대부분의 실험자들은 서로의 작품을 읽었지만 그들의 이론은 가족과 유사할 뿐이었다. 17세기 행보에 따른 초기 이론 그룹은 인력과 척력 생성을 근본적인 전기적 현상으로 간주했다. 이 그룹은 척력을 일종의 기계적 반동으로 인한 이차적 효과로 간주하고 그레이가 새로 발견한 효과인 전기 전도에 대한 토론과 체계적인 연구를 가능한 한 오랫동안 연기하는 경향이 있었다. 다른 "전기학자"는 인력과 척력을 전기의 기본적인 표현으로 간주하고 그에 따라 이론과 연구를 수정했다.


패러다임이나 패러다임에 대한 후보가 없는 경우, 특정 과학의 발전과 관련될 수 있는 모든 사실은 똑같이 관련성이 있는 것처럼 보일 가능성이 높다. 결과적으로 초기 사실 수집은 이후의 과학 발전에 익숙해진 활동보다 훨씬 더 거의 무작위적인 활동이다. 결과적인 사실 풀에는 의학, 달력 제작, 야금술과 같은 확립된 기술에서 검색할 수 있는 좀 더 난해한 데이터와 함께 일상적인 관찰과 실험을 통해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 공예는 ​​우연히 발견할 수 없는 사실에 대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원천이기 때문에 기술은 종종 새로운 과학의 출현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사실 수집은 많은 중요한 과학의 기원에 필수적이었지만, 예를 들어 플리니우스의 백과사전적 저술이나 17세기 베이컨의 자연사를 조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것이 곤경을 초래한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결과가 과학적인 문헌이라고 부르는 것을 주저한다. 또한 모든 설명은 부분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전형적인 자연사는 엄청난 상황 설명에서 후대 과학자들이 중요한 조명의 원천을 찾을 세부 사항만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전기의 초기 "역사" 중 거의 어느 것도 문지른 유리막대에 끌린 왕겨가 다시 튀어 나온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 효과는 전기적인 것이 아니라 기계적인 것처럼 보였다. 더욱이, 우연한 사실 수집가는 비판적일 시간이나 도구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연사는 종종 위와 같은 설명을 다른 설명, 예를 들어 항연막에 의한 가열과 병치하는데, 이는 현재 우리가 전혀 확인할 수 없다.  고대 정역학, 동역학, 기하광학의 경우와 같이 사전 확립된 이론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고 수집된 사실이 첫 번째 패러다임의 출현을 허용할 만큼 충분히 명확하게 말하는 경우는 아주 가끔이다. 이것이 과학 발전의 초기 단계에 특징적인 학파를 만드는 상황이다. 베이컨의 Novum Organum에서 그는 전기를 유체라고 생각하여 특히 전도를 강조한 전기 기술자들은 이에 대한 훌륭한 사례를 제공한다. 알려진 다양한 인력 및 척력 효과를 거의 감당할 수 없는 이러한 믿음에 이끌려 그들 중 몇몇은 전기 유체를 병에 담는 아이디어를 고안했다. 그들의 노력의 즉각적인 결실은 라이덴병(Leyden jar)이었는데, 이 장치는 자연을 우연히 또는 무작위로 탐구하는 사람에 의해 결코 발견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1740년대 초에 적어도 두 명의 연구자에 의해 독립적으로 개발되었다. 전기 연구를 시작할 때부터 프랭클린은 그 이상하고 특히 드러나는 특별한 장치를 설명하는 데 특히 관심을 가졌다. 그의 성공은 그의 이론을 패러다임으로 만든 가장 효과적인 논증을 제공했지만, 이 논증은 알려진 전기 척력 사례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었다. 롤러와 롤러 사이가 문제가 되는 경우는 음으로 하전된 물체의 상호 척력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Cohen은 그것이 어떤 실험을 수행할 가치가 있고, 어떤 실험은 이차적이거나 지나치게 복잡한 전기 현상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수행할 가치가 없는지 제안했다. 오직 패러다임만이 작업을 훨씬 더 효과적으로 수행했다. 부분적으로는 학파 간 논쟁이 끝났기 때문에 기본 사항에 대한 끊임없는 반복이 끝났고 부분적으로는 자신들이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확신이 과학자들이 더 정확하고 난해하며 소모적인 종류의 작업을 수행하도록 장려했기 때문이다. 모든 전기 현상에 대한 관심에서 벗어나, 연합된 전기 기술자 그룹은 특정 현상을 훨씬 더 세부적으로 추적할 수 있었고, 작업을 위한 많은 특수 장비를 설계하고 이전 전기 기술자보다 더 완고하고 체계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사실 수집과 이론 설명 모두 고도로 지시된 활동이 되었다. 다음, 이러한 고도로 지향적이거나 패러다임 기반 연구의 성격을 검토하지만 먼저 패러다임의 출현이 해당 분야를 실행하는 그룹의 구조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간략하게 언급한다. 자연과학의 발전에 있어서 개인이나 집단이 먼저 다음 세대의 실무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총론을 생산하게 되면, 오래된 학파는 점차 사라지게 된다. 프랭클린의 이론이 받아들여졌다고 해서 모든 논쟁이 끝난 것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1759년 로버트 심머(Robert Symmer)는 이 이론의 2유체 버전을 제안했고, 그 후 수년 동안 전기 기술자들은 전기가 단일 유체인지 아니면 2유체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전기 기술자들은 이 점에 대해 계속 의견이 나뉘었지만 어떤 실험적 테스트도 이론의 두 가지 버전을 구별할 수 없으며 따라서 둘이 동일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로써 프랭클린 이론이 확립되었다.


Ance(Adaptation to New Cognitive Environment )는 멤버들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으로 인해 발생한다. 이러한 징후가 암시하듯이, 이전에 단지 자연 연구에만 관심이 있었던 그룹을 전문직 또는 적어도 학문 분야로 전환시키는 것은 때때로 패러다임을 수용하는 것일 뿐이다. 과학 분야에서는 전문 저널의 형성, 전문가 협회의 기초, 커리큘럼에서 특별한 위치에 대한 주장은 일반적으로 그룹이 단일 패러다임을 처음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관련되어 왔다. 적어도 이것은 과학 전문화의 제도적 패턴이 처음으로 발전했던 150년 전과 전문화 관련 도구가 그 자체의 명성을 획득한 아주 최근 사이의 경우였다. 과학 그룹에 대한 보다 엄격한 정의는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대신 그들은 일반적으로 공유된 패러다임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고 자신에게 전달된 논문을 읽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것으로 입증된 전문 동료에게만 전달되는 간략한 기사로 나타난다. 오늘날 과학 분야에서 책은 일반적으로 과학 생활의 한 측면 또는 다른 측면에 대한 텍스트이거나 회고적인 성찰이다. 글을 쓰는 과학자는 자신의 전문적 평판이 향상되기보다는 손상되었다고 느낄 가능성이 더 높다. 다양한 과학 발전의 초기, 패러다임 이전 단계에서만 책은 일반적으로 다른 창작 분야에서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전문적 성취와 동일한 관계를 소유했다. 그리고 기사가 있든 없든 여전히 연구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책을 보유하고 있는 분야에서만 전문화의 선이 여전히 느슨하게 그려져 있어 일반인이 실무자의 원본 보고서를 읽음으로써 진행 상황을 따라갈 수 있기를 바랄 수 있다. 수학과 천문학 모두에서 연구 보고서는 고대부터 일반 교육을 받은 청중이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역학 분야의 연구는 중세 후반에 유사하게 난해해졌다. 사회 과학의 일부에서는 오늘날에도 발생하고 있을 것이다. 비록 전문적인 과학자와 다른 분야의 동료들을 갈라놓는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는 점을 개탄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고 당연히 타당함에도 불구하고, 그 격차와 과학 발전에 내재된 메커니즘 사이의 본질적인 관계에 대해서는 너무 적은 관심이 기울여지고 있다. 선사시대 이후로 계속해서 하나의 연구 분야가, 역사가가 과학으로 부르는 선사시대와 고유한 역사 사이의 간극을 넘었다. 18세기 첫 40년 동안 전기에 관한 저술가들은 16세기의 전임자들보다 전기 현상에 대해 훨씬 더 많은 정보를 보유했다. 1740년 이후 반세기 동안 새로운 종류의 전기 현상이 목록에 추가되었다. 18세기 후반 볼타의 전기 연구는 18세기 초 그레이(Gray), 뒤페이(Du Fay), 심지어 프랭클린(Franklin)의 연구보다 16세기 연구와 더 멀리 떨어져 있는 이유는 과학적 방법의 발전, 새로운 도구와 기술의 개발, 과학 지식의 축적,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발달 때문이다. 그 시점부터 그들은 더욱 구체적이고 난해한 문제를 다루게 되었고, 점점 더 많은 지식인을 대상으로 한 책보다는 다른 전기 기술자를 대상으로 한 기사를 통해 그 결과를 보고했다. 돌이켜보면, 한 분야를 과학이라고 명확하게 선언하는 또 다른 기준을 찾기는 어렵다. 여기에 '패러다임'이 있다. 전유를 허용하는 '패턴'은 '패러다임'을 정의하는 데 흔히 사용되는 패턴이 아니다. 예를 들어 문법에서 'amo, amas, amat'은 수많은 다른 라틴어 동사(e)를 활용하는 데 사용되는 패턴을 표시하기 때문에 패러다임이다. 이것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우리는 패러다임이 처음 등장할 당시 범위와 정확성 모두에서 얼마나 제한적일 수 있는지 인식해야 한다. 패러다임은 실무자 그룹이 심각하다고 인식하게 된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 경쟁 그룹보다 더 성공적이기 때문에 그 지위를 얻는다. 그러나 더 성공한다는 것은 단일 문제에서 완전히 성공하거나 많은 문제에서 눈에 띄게 성공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제로 성숙한 과학의 실무자가 아닌 사람들은 패러다임이 수행해야 할 이런 종류의 정리 작업이 얼마나 많은지, 그러한 작업이 실행에서 얼마나 매력적인지 깨닫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정리 작업은 경력 전반에 걸쳐 대부분의 과학자를 참여시키는 작업이다. 그것들은 내가 여기서 정상 과학이라고 부르는 것을 구성한다. 역사적으로든 현대의 실험실에서든 면밀히 조사해 보면, 그 계획은 패러다임이 제공하는 미리 형성되고 상대적으로 유연하지 않은 상자에 자연을 강요하려는 시도인 것 같다. 패러다임은 상대적으로 난해한 작은 범위의 문제에 주의를 집중함으로써 과학자들이 자연의 일부를 다른 방법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상세하고 깊이 있는 조사를 수행하도록 강요한다. 그리고 정상과학은 패러다임이 효과적으로 기능하지 않을 때마다 연구를 묶는 제한의 완화를 보장하는 내장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그 시점에서 과학자들은 다르게 행동하기 시작하고 연구 문제의 성격도 변한다. 아마도 사실에 기반한 과학적 조사에는 패러다임이 특히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여주며, 그것들은 항상 또는 영구적으로 구별되지는 않는다. 문제 해결에 이를 사용함으로써 패러다임은 보다 정확하고 다양한 상황에서 문제를 결정할 가치가 있게 만들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알리는 정확성과 범위를 높이려는 시도는 실험 및 관찰 과학 문헌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계속해서 복잡한 특수 장치가 설계되었으며, 해당 장치의 발명, 구성 및 배포에는 일류 인재, 많은 시간 및 상당한 재정적 지원이 필요했다. 싱크로트론과 전파 망원경은 연구원들이 추구하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것을 패러다임이 보장한다면 연구원들이 얼마나 노력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가장 최근의 예일 뿐이다. 곧 살펴보겠지만, 실험 문제에서 정상과학의 이론 문제로 전환할 때 과학 이론, 특히 그것이 주로 수학적 형식으로 제시된 경우 자연과 직접 비교할 수 있는 영역은 거의 없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은 아직 세 개뿐이다. 더욱이, 적용이 가능한 영역에서도 예상되는 합의를 심각하게 제한하는 이론적, 도구적 근사치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 합의를 개선하거나 합의가 입증될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을 찾는 것은 실험자와 관찰자의 기술과 상상력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을 제시한다. 일치를 입증하려는 시도는 정상적인 실험 작업의 두 번째 유형이며, 첫 번째 시도(사실을 알리는 정확성과 범위를 높이는 것)보다 훨씬 더 명백하게 패러다임에 의존한다. 실험과 관찰의 세 번째 부류는 정상과학의 사실 수집 활동을 모두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패러다임 이론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남아 있는 모호함을 일부 해결하고, 이전에 관심을 끌기만 했던 문제의 해결을 허용하기 위해 수행된 경험적 작업으로 구성된다. 우리는 그것이 이론적인 노력 없이 그 자체를 위해 수행된 측정을 검토함으로써 발견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쿨롱의 성공은 점전하 사이의 힘을 측정하기 위한 그의 특수 장치 구성에 달려 있었지만, 그 설계는 전기 유체의 모든 입자가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입자에 작용한다는 이전의 인식에 의존했다. 한편, Joule의 실험을 참조하여 패러다임 접합을 통해 정량적 법칙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설명할 수도 있다. 사실, 질적 패러다임과 양적 법칙 사이의 관계는 매우 일반적이고 가깝기 때문에 갈릴레오 이래로 그러한 법칙은 실험적 결정을 위해 장치가 설계되기 몇 년 전에 패러다임의 도움으로 종종 정확하게 추측되었다. 다만, 패러다임을 명확히 하는 실험은 다른 것보다 탐구와 유사할 수 있으며, 특히 자연의 규칙성의 양적 측면보다는 질적 측면을 더 많이 다루는 시대와 과학에서 널리 퍼져 있다. 한 가지 현상에 대해 개발된 패러다임이 밀접하게 관련된 다른 현상에 적용할 때 모호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 다음에는 새로운 관심 영역에 패러다임을 적용하는 대안적인 방법 중에서 선택하기 위한 실험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칼로리 이론의 패러다임 적용은 혼합물과 상태 변화에 의한 가열 및 냉각이었다. 이는 압축에 의한 가열이라는 명칭이 확립되었으며, 이 분야의 모든 추가 실험은 이러한 방식으로 패러다임에 따라 달라졌다.



II.이제 실험적 문제와 관찰적 문제와 거의 동일한 부류에 속하는 정상과학의 이론적 문제를 살펴보자. 일반적인 이론적 작업의 일부는 작은 부분이지만 단순히 기존 이론을 사용하여 내재적 가치가 있는 사실 정보를 예측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천문학적 천체력의 제조, 렌즈 특성의 계산, 전파 곡선의 생성이 이러한 종류의 문제의 예이다. 이는 이론을 조작하는 것인데, 그 결과 예측이 본질적으로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직접 실험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목적은 패러다임의 새로운 적용을 보여주거나 이미 적용된 패러다임의 정확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작업에 대한 필요성은 이론과 자연 사이의 접점을 개발하는 데 종종 직면하는 엄청난 어려움에서 발생한다. 이러한 어려움은 뉴턴 이후 역학의 역사를 조사함으로써 간략하게 설명될 수 있다. 18세기 초에 프린키피아에서 패러다임을 발견한 과학자들은 그 결론의 일반성을 당연하게 여겼고, 그렇게 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과학사에 알려진 다른 어떤 연구도 연구의 범위와 정확성 모두에서 이토록 큰 증가를 동시에 허용한 적이 없다. 하늘에 대해 뉴턴은 케플러의 행성 운동 법칙을 도출했으며 달이 이를 따르지 못하는 관찰된 특정 측면도 설명했다. 당시의 과학 수준을 고려하면 시연의 성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뉴턴 법칙의 추정 일반성을 고려할 때 이러한 적용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으며 뉴턴은 다른 법칙을 거의 밝히지 않았다. 더욱이 오늘날 물리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 동일한 법칙을 사용하여 달성할 수 있는 것과 비교할 때 뉴턴의 몇 가지 응용 프로그램은 정확하게 설계되지도 않았다. Principia는 주로 천체 역학 문제에 적용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어쨌든 육상(물체의 운동) 문제는 원래 갈릴레오와 호이겐스가 개발하고 18세기에 베르누이, 달랑베르 등이 대륙에서 확장한 완전히 다른 일련의 기술에 의해 이미 큰 성공을 거두고 공격을 받고 있었다. 예를 들어 그의 법칙을 진자에 적용할 때 뉴턴은 진자 길이에 대한 고유한 정의를 제공하기 위해 추를 질량점으로 취급해야 했다. 뉴턴의 이론을 하늘에 적용할 때에도 동일한 어려움이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간단한 양적 망원경 관찰은 행성이 케플러의 법칙을 완전히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내며, 뉴턴의 이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러한 법칙을 도출하기 위해 뉴턴은 개별 행성과 태양 사이의 인력을 제외한 모든 중력을 무시해야 했다. 행성들 역시 서로 끌어당기기 때문에 응용이론과 망원경 관측 사이에는 대략적인 일치만이 예상될 수 있다. 뉴턴의 작업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한 사람 중 누구도 실험과 관찰에 대한 제한적인 동의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합의의 한계는 뉴턴의 후계자들에게 많은 흥미로운 이론적 문제를 남겼다. 이러한 수치 중 다수는 뉴턴이나 현대의 대륙 역학 학파가 시도조차 하지 않은 응용에 필요한 수학을 동시에 개발했다. 이러한 적용 문제는 아마도 18세기의 가장 훌륭하고 소모적인 과학 작업을 설명해 준다. 적어도 수학적인 과학에서는 대부분의 이론적 작업이 이런 종류이다. 양적 과학과 질적 과학 모두에서 일부 문제는 단순히 재구성을 통한 명확화를 목표로 한다. 이러한 변화는 패러다임 접합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이전에 설명한 경험적 작업의 결과이다. 실제로 그러한 종류의 작업을 경험적 작업으로 분류하는 것은 임의적이었다. 그의 측정 결과는 그 이론의 개선이었다. 물론 그것들이 과학 문헌 전체를 완전히 망라하지는 않는다. 또한 특별한 문제도 있으며, 과학 분야 전체를 그토록 특히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 해결책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요청에 대해 특별한 문제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정상적인 연구의 발전으로 준비된 특별한 경우에만 나타난다. 따라서 최고의 과학자들조차 수행하는 문제의 압도적인 대다수는 필연적으로 위에서 설명한 범주 중 하나에 속한다. 패러다임 하에서의 작업은 다른 방식으로는 수행될 수 없으며, 패러다임을 버리는 것은 패러다임이 정의하는 과학 탐구를 중단하는 것이다. 그것들은 과학 혁명이 전환되는 중심점이다. 그러나 그러한 혁명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그 길을 준비하는 정상과학적 추구에 대한 보다 포괄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아마도 우리가 방금 직면한 일반적인 연구 문제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상당히 개념적 연구에 집중하며, 경이로운 주요 혁신을 생성하려는 목표가 적고, 기존 파라다임 내 연구를 수행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18세기에는 팬 저울과 같은 장치를 사용하여 전기적 인력을 측정하는 실험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것들은 일관적이지도 단순하지도 않은 결과를 산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들이 파생된 패러다임을 명확히 표현하는 데 사용될 수 없었다. 따라서 그들은 전기 연구의 지속적인 발전과 관련이 없고 관련도 없는 단순한 사실로 남아 있었다. 보유한 후속 패러다임을 돌이켜보면 그들이 어떤 전기적 현상을 나타내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쿨롱과 그의 동시대 사람들도 이 후기 패러다임, 즉 인력의 문제에 적용될 때 동일한 기대를 낳는 패러다임을 보유했다. 쿨롱은 패러다임 표현에 의해 동화될 수 있는 결과를 제공하는 장치를 설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그 결과가 아무도 놀라지 않은 이유이자 쿨롱의 동시대인 중 몇몇이 이를 미리 예측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패러다임의 구체화를 목표로 하는 프로젝트도 예상치 못한 새로움을 목표로 삼지는 않는다.


단순히 획득할 정보의 중요성 때문에 더 나은 분광계를 개발하거나 현 진동 문제에 대한 개선된 솔루션을 생산하는 데 수년을 투자하는 사람은 없다. 천문력을 계산하거나 기존 장비를 사용한 추가 측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데이터는 종종 중요하지만 이러한 활동은 이전에 수행된 절차의 대부분 반복이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정기적으로 거부한다. 그러한 거부는 정상적인 연구 문제의 매력에 대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퍼즐은 여기에 사용된 완전히 표준적인 의미에서 독창성이나 해결 능력을 테스트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특별한 범주의 문제이다. 사전 삽화는 '직소 퍼즐'과 '십자말 풀이'이며, 이것이 우리가 이제 분리해야 할 정상과학의 문제와 공유하는 특징이다. 반대로 정말 시급한 문제는 다음과 같다. 두 개의 서로 다른 퍼즐 상자에서 조각이 무작위로 선택되는 직소 퍼즐을 생각해 보라. 그 문제는 가장 천재적인 사람조차도 무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해결 능력을 시험하는 역할을 할 수 없다. 내재적 가치가 퍼즐의 기준은 아니지만 솔루션의 보장된 존재 기준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과학계가 패러다임을 통해 얻는 것 중 하나가 패러다임이 당연시되면서도 해결책이 있다고 가정할 수 있는 문제를 선택하는 기준이라는 점을 살펴보았다. 대부분의 경우 이는 커뮤니티가 과학적인 것으로 인정하거나 구성원이 수행하도록 권장하는 유일한 문제이다. 이전에 표준이었던 많은 문제를 포함한 다른 문제들은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다른 분야의 관심사로, 때로는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없을 만큼 너무 문제가 있는 것으로 거부된다. 패러다임은 퍼즐 형태로 환원될 수 없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로부터 공동체를 보호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문제는 패러다임이 제공하는 개념적이고 도구적인 관점에서 기술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문제는 주의를 산만하게 할 수 있으며, 이는 17세기 베이컨주의의 여러 측면과 일부 현대 사회과학에서 훌륭하게 설명된 교훈이다. 정상과학이 그토록 빠르게 발전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실무자가 자신의 독창성 부족으로 인해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상과학의 문제가 이런 의미에서 수수께끼라면, 우리는 과학자들이 왜 그토록 열정과 헌신으로 그 문제를 공격하는지 더 이상 질문할 필요가 없다. 인간은 온갖 종류의 이유로 과학에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가장 위대한 과학자 중 다수는 이런 종류의 까다로운 퍼즐에 전문적인 관심을 모두 쏟았다. 이제 퍼즐과 정상과학의 문제 사이의 평행성에 대한 또 다른, 더 어렵고 더 드러나는 측면을 살펴보겠다. 문제를 수수께끼로 분류하려면 확실한 해결책 이상의 특징이 있어야 한다. 또한 수용 가능한 솔루션의 성격과 이를 획득하는 단계를 모두 제한하는 규칙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직소 퍼즐을 푸는 것은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이는 직소 퍼즐 솔루션을 관리하는 규칙 중 하나이다. 크로스워드 퍼즐, 수수께끼, 체스 문제 등의 해결 방법에 대한 유사한 제한 사항이 쉽게 발견된다. 그러나 용어의 상당히 확장된 사용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개인의 역할과 과학 발전의 전반적인 패턴 사이의 갈등으로 인한 좌절은 때때로 매우 심각할 수 있다. 그와는 반대로 그는 확립된 광학 이론의 관점에서 그의 장치를 분석함으로써 그 장치가 생성하는 숫자가 이론에 파장으로 들어가는 숫자임을 보여야 한다. 이론에 남아 있는 모호함이나 장치의 분석되지 않은 구성 요소로 인해 그가 시연을 완료하는 데 방해가 된다면 그의 동료들은 그가 전혀 측정하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해당 조건이 충족될 때까지 아무런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유사한 종류의 제한이 이론적 문제에 대한 허용 가능한 솔루션을 제한했다. 이는 과학법칙과 과학적 개념 및 이론에 대한 명시적인 진술이다. 그러한 진술은 계속 존중되지만, 그러한 진술은 수수께끼를 풀고 수용 가능한 해결책을 제한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뉴턴의 법칙은 18세기와 19세기에 이러한 기능을 수행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한, 물질의 양은 물리학자들에게 기본적인 존재론적 범주였으며, 물질 조각들 사이에 작용하는 힘은 연구의 지배적인 주제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규칙은 역사적 연구에서 나타나는 유일한 다양성도 아니고 심지어 가장 흥미로운 다양성도 아니다. 예를 들어, 법과 이론의 수준보다 낮거나 더 구체적인 수준에서는 선호하는 도구 유형과 승인된 도구가 합법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방식에 대한 수많은 약속이 있다. 화학 분석에서 불의 역할에 대한 태도의 변화는 17세기 화학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리가 엑스레이의 발견을 분석할 때 우리는 이런 종류의 약속에 대한 이유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덜 지역적이고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과학의 변함없는 특성은 아닌 역사적 연구가 정기적으로 보여주는 더 높은 수준의 준형이상학적인 헌신이다. 예를 들어 1630년경 이후, 특히 데카르트의 막대한 영향력을 지닌 과학 저술이 등장한 이후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우주는 미세한 소립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든 자연 현상은 소립자의 형태, 크기, 운동 및 상호 작용 현상의 관점에서 설명될 수 있다고 가정했다. 그 헌신의 둥지는 형이상학적이면서도 화학적 변화의 방법론적인 것으로 입증되었다. 끝으로, 더 높은 수준에서는 누구도 과학자가 될 수 없는 또 다른 일련의 약속이 있다. 예를 들어, 과학자는 세계를 이해하고 세계의 정확성과 범위를 확장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의심할 바 없이 이와 같은 다른 규칙이 여전히 있으며, 이는 항상 과학자들에게 적용되었다. 그것은 성숙한 전문 분야의 실무자에게 세계와 과학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는 규칙을 제공하기 때문에 그는 이러한 규칙과 기존 지식이 정의하는 난해한 문제에 확신을 가지고 집중할 수 있다. 주어진 시간에 특정 과학 전문 분야의 모든 실무자가 준수해야 하는 규칙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이러한 규칙 자체가 해당 전문가의 실무에서 공통적으로 갖는 모든 것을 명시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정상과학은 고도로 결정된 활동이지만 규칙에 의해 완전히 결정될 필요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에세이의 시작 부분에서 나는 일반적인 연구 전통의 일관성의 원천으로 공유된 규칙, 가정, 관점보다는 공유된 패러다임을 소개했다. 규칙은 패러다임에서 파생되지만 규칙이 없더라도 패러다임은 연구를 안내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이것이 교과서, 강의, 실험실 연습을 통해 드러난 공동체의 패러다임이다. 이를 연구하고 함께 실습함으로써 해당 커뮤니티의 구성원은 자신의 직업을 배운다. 물론 역사가는 그 지위가 아직 의심스러운 업적이 차지하는 반그림자 영역을 추가로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해결된 문제와 기술의 핵심은 대개 분명하다. 때때로 모호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숙한 과학계의 패러다임은 상대적으로 쉽게 결정될 수 있다. 그러나 공유된 패러다임의 결정은 공유된 규칙의 결정이 아니다. 역사학자는 이를 수행할 때 공동체의 패러다임을 서로 비교하고 현재 연구 보고서와 비교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목표는 해당 커뮤니티의 구성원이 보다 글로벌한 패러다임에서 추상화하고 연구에서 규칙으로 배포했을 수 있는 명시적 또는 암시적인 분리 가능한 요소를 발견하는 것이다. 특정한 과학적 전통의 진화를 기술하거나 분석하려고 시도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이런 종류의 수용된 원칙과 규칙을 찾았을 것이다. 그가 공동체의 공유된 신념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일반화 중 일부는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표현하지 않고 그가 상상할 수 있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했다면, 그가 연구하는 그룹의 일부 구성원은 거의 확실히 거부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 전통의 일관성을 규칙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면 해당 영역의 공통 기반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 결과적으로, 주어진 정상적인 연구 전통을 구성할 수 있는 일련의 규칙을 찾는 것은 지속적이고 깊은 좌절의 원천이 된다. 아인슈타인은 일련의 뛰어난 문제들에 대해 명백히 영구적인 해결책을 내놓았지만, 그러한 해결책을 영구적으로 만드는 특정 추상적인 특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동의하지 않으며 때로는 이를 인식하지도 못한다. 실제로 패러다임의 존재는 완전한 규칙 세트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할 필요조차 없다. 필연적으로 그러한 진술의 첫 번째 효과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한 부분적인 답변은 고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에 의해 이론화되었지만 매우 다른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여러 게임, 의자 또는 나뭇잎이 공유하는 일부 속성에 대한 논의가 해당 용어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데 종종 도움이 되지만, 클래스의 모든 구성원과 그들에게만 동시에 적용할 수 있는 일련의 특성은 없다. 그러한 네트워크의 존재는 해당 개체나 활동을 식별하는 데 성공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단일한 정상과학 전통 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연구 문제와 기술에도 동일한 종류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전통에 그 성격을 부여하고 과학적 사고를 유지하는 명시적이거나 완전히 발견 가능한 일련의 규칙과 가정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참여하는 연구 전통에 의해 나타나는 일관성은 추가적인 역사적 또는 철학적 조사를 통해 밝혀질 수 있는 기본 규칙 및 가정의 존재조차 암시하지 않을 수도 있다. 과학자들이 일반적으로 무엇이 특정 문제나 해결책을 정당하게 만드는지 묻거나 토론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가 적어도 직관적으로는 그들이 답을 알고 있다고 가정하도록 유혹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질문이나 답변이 그들의 연구와 관련이 없다고 느껴진다는 것을 나타낼 뿐이다. 패러다임은 명백히 추상화될 수 있는 연구에 대한 어떤 규칙 세트보다 선행적이고 더 구속력이 있으며 더 완전할 수 있다. 


III.이제 패러다임이 실제로 이런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믿는 몇 가지 이유를 제시함으로써 그 명확성과 긴급성을 모두 높이려고 노력해 보겠다. 이미 충분히 논의된 첫 번째 문제는 특정한 정상과학적 전통을 이끌어온 규칙을 발견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그 어려움은 철학자가 모든 게임의 공통점을 말하려고 할 때 직면하게 되는 어려움과 거의 같다. 첫 번째가 실제로 당연한 결과인 두 번째는 과학 교육의 본질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과학자들은 결코 개념, 법칙, 이론을 추상적인 방식으로 스스로 배우지 않는다는 점은 이미 분명하다. 대신, 이러한 지적 도구는 처음부터 역사적으로나 교육학적으로 이전 단위에서 해당 응용 프로그램을 통해 표시된다. 승인된 후에는 동일한 응용 프로그램이나 다른 응용 프로그램이 이론을 교과서에 첨부하여 미래의 실무자가 자신의 업무를 배울 수 있다. 반대로, 이론을 학습하는 과정은 연필과 펜을 사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연습을 포함한 응용 연구에 달려 있다. 그리고 '시간'에 대해 그는 자신의 텍스트에 있는 불완전하지만 때로는 도움이 되는 정의를 사용하는 것보다 이러한 개념을 문제 해결에 적용하는 것을 관찰하고 참여함으로써 그렇게 한다. 손가락 운동이나 행동을 통한 학습 과정은 직업 입문 과정 전반에 걸쳐 계속된다. 학생이 신입생 과정부터 박사 학위 논문까지 진행함에 따라 그에게 할당된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고 전례가 덜 완전해진다. 그러나 그들은 이후의 독립적인 과학 경력 동안 일반적으로 그를 사로잡는 문제와 마찬가지로 이전 업적을 계속해서 밀접하게 모델화하고 있다. 그러한 추상화를 배웠다면 주로 성공적인 연구 수행 능력을 통해 이를 보여준다. 특히 패러다임 이전 시대에는 합법적인 방법, 문제, 해결 기준에 대한 빈번하고 심도 있는 논쟁이 정기적으로 이루어지지만, 이러한 논쟁은 합의를 도출하기보다는 학파를 정의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이미 광학과 전기 분야에서 이러한 논쟁 중 몇 가지를 언급했으며, 이는 17세기 화학과 19세기 초 지질학의 발전에 훨씬 더 큰 역할을 했다. 게다가 이러한 논쟁은 패러다임이 등장한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정상과학 시대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지만, 패러다임이 처음으로 공격을 받고 변경되는 시기인 과학 혁명 직전과 도중에는 정기적으로 반복된다. 뉴턴 역학에서 양자역학으로의 전환은 물리학의 본질과 표준에 관한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그 중 일부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과 통계역학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이전에도 갈릴레오와 뉴턴 역학의 동화는 과학에 정당한 표준에 관해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 데카르트주의자, 라이프니츠주의자와 함께 특히 유명한 일련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과학자들이 자신의 분야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었는지 여부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 규칙 검색은 일반적으로 보유하지 않는 기능을 얻는다. 화학에 대한 어느 에세이의 서문에서는 큰 혁명뿐만 아니라 작은 혁명도 있을 수 있으며 일부 혁명은 전문 분야의 구성원에게만 영향을 미치며 그러한 그룹에게는 새롭고 예상치 못한 현상의 발견도 혁명적일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한 종류의 선택된 혁명도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지금까지 말한 내용은 정상과학이 그 패러다임 중 하나뿐 아니라 패러다임 전체와 함께 서거나 무너져야 하는 단일하고 통합된 체계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과학은 분명히 그런 경우가 거의 없거나 전혀 없다. 오히려 규칙을 패러다임으로 대체하면 과학 분야와 전문 분야의 다양성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명시적 규칙이 존재하는 경우 일반적으로 매우 광범위한 과학 그룹에 공통되지만 패러다임은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오늘날 그 그룹의 각 구성원은 양자 역학의 법칙을 배우고 대부분은 연구나 교육의 어느 시점에서 이러한 법칙을 사용한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이러한 법칙의 동일한 적용을 배우지 않으며 따라서 양자 역학적 실제의 변화에 ​​의해 모두 동일한 방식으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 전문 분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소수의 물리학자들은 양자역학의 기본 원리만을 접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이러한 원리를 화학에 적용하는 패러다임을 자세히 연구하고, 다른 사람들은 고체 상태 물리학 등에 대해 자세히 연구한다. 양자역학이 그들 각자에게 의미하는 바는 그가 어떤 강좌를 수강했는지, 어떤 텍스트를 읽었는지, 어떤 저널을 연구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양자역학 법칙의 변화는 이들 모든 그룹에게 혁명적일 것이지만, 양자역학의 패러다임 적용 중 하나만을 반영하는 변화는 특정 전문 분야의 구성원에게만 혁명적일 필요가 있다. 나머지 전문직 종사자들과 다른 물리학을 적용하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변화는 전혀 혁명적일 필요가 없다. 간단히 말해서, 양자역학은 많은 과학 그룹의 패러다임이지만 모든 과학 그룹에게 동일한 패러다임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공존하지 않으면서 겹치는 정상과학의 여러 전통을 동시에 결정할 수 있다.


자신들의 연구 훈련과 실습을 통해 그것을 보면서, 문제 해결 경험을 통해 분자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우리가 진행하면서 이러한 종류의 패러다임 차이가 때때로 얼마나 결과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지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모든 측면에서 그것은 과학 연구의 가장 일반적인 이미지에 매우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그러나 과학 시스템의 표준 원리가 하나 빠져 있다. 정상과학은 사실이나 이론의 새로운 것을 목표로 삼지 않으며, 성공하더라도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그러나 새롭고 예상치 못한 현상은 과학 연구를 통해 반복적으로 발견되고, 과학자들은 급진적인 새로운 이론을 계속해서 만들어 냈다. 역사는 심지어 과학 기업이 이런 종류의 놀라움을 만들어내기 위한 독특하고 강력한 기술을 개발했음을 시사한다. 과학의 이러한 특성이 이미 말한 내용과 조화를 이루려면 패러다임에 따른 연구가 패러다임 변화를 유도하는 특히 효과적인 방법이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실과 이론의 근본적인 참신함이 하는 일이다. 그들이 과학의 일부가 된 후에는 기업, 적어도 새로운 분야가 있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는 다시는 예전과 같지 않다. 이제 우리는 최초의 발견이나 사실의 새로움을 고려하고 그 다음에는 세운 가설이나 이론의 새로움을 고려하면서 어떻게 이런 종류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지 질문해야 한다. 그러나 자연이 어떻게든 정상과학을 지배하는 패러다임에 의해 유도된 기대를 위반했다는 인식과 함께 발견과 가설, 사실과 이론의 구분은 매우 인위적이라는 것이 즉각 입증될 것이다. 과학적 발견에서 사실적 새로움과 이론적 새로움이 얼마나 밀접하게 얽혀 있는지 알아보려면 특히 유명한 사례인 산소의 발견을 살펴보라. 정상과학의 진보, 즉 공압화학의 경우에는 획기적인 발전을 위한 길을 아주 철저하게 준비했다. 영국의 과학자이자 신성인 Joseph Priestley는 다수의 고체 물질에 의해 생성되는 "공기"에 대한 장기간의 정상적인 조사에서 가열된 적색 수은 산화물에 의해 방출되는 가스를 하나의 항목으로 수집했다. 1775년에 그는 가스를 플로지스틱이 제거된 공기로 보았지만 이는 여전히 산소가 아니며 심지어 플로지스틱 화학자들에게는 상당히 예상치 못한 종류의 가스이기도 했다. 1775년 그는 가스를 "공기 자체 전체"로 식별하게 되었다. 아마도 우리는 라부아지에가 가스뿐만 아니라 가스가 무엇인지 알게 된 1776년과 1777년의 연구를 기다릴 것이다. 그러나 이 조차도 의문의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1777년과 그의 생애 말년에 라부아지에는 산소가 원자적인 "산성의 원리"이고 산소 기체는 그 "원리"가 열의 문제인 칼로리와 결합할 때만 형성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산소는 그 이전에 표준 화학 물질이 되었다. 분명히 산소 발견과 같은 사건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어휘와 개념이 필요하다. 의심할 여지 없이 옳지만, "산소가 발견되었습니다"라는 문장은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이 우리가 흔히 보는 개념과 유사한 하나의 단순한 행위라고 암시함으로써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그랜트는 이제 그 발견이 반드시 길지는 않지만 확장된 개념 동화 과정을 포함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실제로 산소의 발견이 화학의 새로운 패러다임 출현의 친밀한 부분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시작한 우선순위의 문제는 결코 그렇게 중요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경우에도 새로운 현상과 그 발견자에게 부여되는 가치는 그 현상이 패러다임이 유도한 기대를 어느 정도 위반했는지에 대한 우리의 평가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나중에 중요해질 것이기 때문에 산소의 발견 자체가 화학 이론의 변화를 가져온 원인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하라. 라부아지에는 새로운 가스 발견에 참여하기 오래 전에 플로지스톤 이론에 문제가 있고 불타는 물체가 대기의 일부를 흡수한다고 확신했다. 1772년 아카데미 산소에 대한 연구는 라부아지에의 초기 감각에 뭔가 잘못되었다는 추가적인 형태와 구조를 부여한 것이었다.


한편, 엑스레이는 사고를 통한 발견의 전형적인 사례이며, 이러한 유형은 과학적 보고의 비인격적인 기준이 우리가 쉽게 인식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자주 발생한다. 그 이야기는 물리학자 뢴트겐이 방전이 진행 중일 때 차폐된 장치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백금-시안화물 바륨 스크린이 빛을 발하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음극선에 대한 일반적인 조사를 중단했던 날 시작된다. 그러나 산소와 X선의 발견 사이에 유의미한 유사점이 존재한다는 것이 훨씬 덜 분명하다. 산소의 발견과는 달리, X선의 발견은 사건 이후 적어도 10년 동안 과학 이론의 어떤 명백한 격변과도 관련되지 않았다. 주기율표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한 새로운 원소는 뢴트겐 시대에도 여전히 찾고 발견되었다. 그들의 추구는 정상과학의 표준적인 프로젝트였으며, 성공은 축하할 일이지 놀랄 일이 아니었다. 원인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안개가 낀 사진 건판에 주의를 기울인 William Crookes 경도 발견 과정에 있었다. 엑스레이는 확립된 이론에 의해 금지되지는 않았지만 확고한 기대를 크게 위반했다. 1890년대에는 음극선 장비가 수많은 유럽 실험실에 널리 배치되었다. 뢴트겐의 장치가 X선을 생성했다면, 다른 많은 실험자들도 한동안 그 사실을 모르고 X선을 생성해 왔을 것이다. 적어도 미래에는 여러 종류의 오랫동안 친숙한 장치가 납으로 보호되어야 할 것이다. 이전의 과학자들이 관련 변수를 인식하고 제어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일반 프로젝트에서 이전에 완료한 작업을 이제 다시 수행해야 한다. 확실히 엑스레이는 새로운 분야를 열었고 따라서 정상과학의 잠재적 영역에 추가되었다. 이론적 기대뿐만 아니라 도구적 기대도 있으며, 이는 종종 과학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예를 들어 그러한 기대 중 하나는 산소의 뒤늦은 발견 이야기의 일부이다. Priestley와 Lavoisier는 "공기의 건강"에 대한 표준 테스트를 사용하여 두 부피의 가스와 한 부피의 산화질소를 혼합하고 혼합물을 물 위에서 흔든 다음 기체 잔류물의 부피를 측정했다. 산소 실험에서 두 사람 모두 한 부피에 가까운 잔류물을 발견하고 이에 따라 가스를 식별했다. 훨씬 후에 부분적으로 사고를 통해 Priestley는 표준 절차를 포기하고 산화질소를 그의 가스와 다른 비율로 혼합하려고 시도했다. 그런 다음 그는 산화질소의 부피가 4배가 되면 잔류물이 거의 전혀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한편, 핵반응을 인식하기가 특히 어려웠던 한 가지 이유는 우라늄을 폭격할 때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아는 사람들이 주로 주기율표의 상단에 있는 원소를 겨냥한 화학 실험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두 가지 주요 핵분열 생성물 중 하나인 크립톤은 반응이 잘 이해될 때까지 화학적 수단으로 식별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른 생성물인 바륨은 핵화학자들이 찾고 있는 중원소를 침전시키기 위해 방사성 용액에 그 원소를 첨가해야 했기 때문에 조사 후반 단계에서 거의 화학적으로 확인되었다.



IV.과학적 발견의 마지막 사례인 라이덴병(Leyden jar)은 이론에 의해 유도된 것으로 기술될 수 있는 부류에 속한다. 지금까지 말한 많은 내용은 이론에 의해 미리 예측된 발견이 정상과학의 일부이며 새로운 종류의 사실을 낳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나는 이전에 19세기 후반에 새로운 화학 원소의 발견이 정상 과학에서 그런 식으로 진행되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러나 모든 이론이 패러다임 이론인 것은 아니다. 패러다임 이전 기간과 패러다임의 대규모 변화로 이어지는 위기 기간 동안 과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스스로 발견의 길을 제시할 수 있는 많은 추측적이고 명확하지 않은 이론을 세운다. 그러나 종종 그 발견은 추측적이고 잠정적인 가설에 의해 예상되는 것과는 다르다. 실험과 잠정적 이론이 함께 결합되어 일치할 때에만 발견이 나타나고 이론이 하나의 패러다임이 된다. 라이덴병의 발견은 우리가 이전에 관찰했던 다른 특징뿐만 아니라 이러한 모든 특징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전기 연구에 대한 단일 패러다임이 없었다. 대신, 상대적으로 접근 가능한 현상에서 파생된 수많은 이론이 경쟁 관계에 있었다. 이러한 실패는 라이덴병 발견의 배경이 되는 몇 가지 변칙성의 근원이다. 실험을 보여주고 여러 다른 변칙적 효과를 소개하는 조사 과정 어딘가에서 우리가 라이덴 병이라고 부르는 장치가 나타났다. 더욱이, 그 출현으로 이어진 실험들 중 다수는 프랭클린에 의해 수행되었으며 유체 이론의 급격한 수정을 필요로 하여 전기에 대한 최초의 완전한 패러다임을 제공했다. 어느 정도 위의 예에 공통된 특징은 새로운 종류의 현상이 나타나는 모든 발견의 특징이다. 학계 외부에서 훨씬 더 잘 알려질 가치가 있는 심리학 실험에서 Bruner와 Postman은 실험 대상자들에게 짧고 통제된 노출에서 일련의 카드 놀이를 식별하도록 요청했다. 각 실험 실행은 일련의 점차적으로 증가된 노출에서 단일 피험자에게 단일 카드를 표시하는 것으로 구성되었다. 각 노출 후 피험자에게 무엇을 보았는지 물었고 두 번의 연속적인 올바른 식별을 통해 실행이 종료되었다. 가장 짧은 노출에서도 많은 피험자가 대부분의 카드를 식별했으며, 약간의 증가 후에는 모든 피험자가 카드를 모두 식별했다. 일반 카드의 경우 이러한 식별은 일반적으로 정확했지만, 변칙적인 카드는 명백한 망설임이나 당혹감 없이 거의 항상 정상으로 식별되었다. 예를 들어 검은색 하트 4개는 스페이드 또는 하트 4개로 식별될 수 있다. 문제에 대한 인식 없이 사전 경험에 의해 준비된 개념 범주 중 하나에 즉시 맞춰졌다. 피험자들이 자신이 확인한 것과 다른 것을 보았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는다. 변칙 카드에 대한 노출이 더욱 증가함에 따라 피험자들은 머뭇거리고 변칙에 대한 인식을 보이기 시작했다. 노출이 더 증가하면 마침내, 때로는 아주 갑자기 대부분의 피험자가 주저 없이 정확한 식별을 할 때까지 훨씬 더 많은 망설임과 혼란이 발생했다. 더욱이, 두세 장의 변칙 카드로 이 작업을 수행한 후에는 나머지 카드에서도 더 이상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일부 주제는 해당 범주를 필수로 조정할 수 없었다. 일반 카드를 인식하는 데 필요한 평균 노출의 40배에도 불구하고 변칙 카드의 10% 이상이 올바르게 식별되지 않았다. 그리고 실패한 피험자들은 극심한 개인적 고통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다음에 우리는 때때로 과학자들이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은유로서든, 마음의 본질을 반영하기 때문에, 그 심리적 실험은 과학적 발견 과정에 대한 놀랍도록 단순하고 설득력 있는 도식을 제공한다. 과학에서는 카드놀이 실험에서처럼 새로움이, 기대에 의해 제공되는 배경에 저항하여 나타나는 어려움을 통해서만 나타난다. 나중에 변칙 현상이 관찰되는 상황에서도 처음에는 예상되고 일반적인 현상만 경험된다. 그러나 더 많이 알게 되면 뭔가 잘못된 것을 깨닫게 되거나 그 효과가 이전에 잘못되었던 것과 연관지어지게 된다. 변칙성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초기 변칙성이 예상되는 것이 될 때까지 개념적 범주가 조정되는 기간을 연다. 이 시점에서 발견이 완료되었다. 나는 이미 그 과정이나 그와 매우 유사한 과정이 모든 근본적인 과학적 신기원의 출현에 관련되어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제 그 과정을 인식함으로써 우리는 마침내 새로운 것을 추구하지 않고 처음에는 그것을 억압하는 경향이 있는 정상 과학이 왜 새로운 것을 발생시키는 데 그토록 효과적인지 알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겠다. 어떤 과학의 발전에서든 처음으로 수용된 패러다임은 일반적으로 해당 과학의 실무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대부분의 관찰과 실험을 매우 성공적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러한 전문화는 한편으로 과학자의 비전을 엄청나게 제한하고 패러다임 변화에 대한 상당한 저항을 초래한다. 과학은 점점 더 엄격해졌다. 주로 예상되는 기능을 위해 구성된 특수 장치가 없으면 궁극적으로 새로움으로 이어지는 결과는 발생할 수 없다. 그리고 장치가 존재하더라도 새로움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인식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나타난다. 이상 현상은 패러다임이 제공하는 배경에서만 나타난다. 패러다임이 더 정확하고 광범위할수록 변칙성과 그에 따른 패러다임 변화의 기회에 대한 지표가 더 민감해진다. 일반적인 발견 방식에서는 변화에 대한 저항조차도 다음에 더 자세히 살펴볼 용도가 있다. 패러다임이 너무 쉽게 항복하지 않도록 보장함으로써 저항은 과학자들이 가볍게 산만해지지 않고 패러다임 변화로 이어지는 변칙이 기존 지식의 핵심까지 침투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중요한 과학적 새로움이 여러 실험실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 자체가 정상과학의 전통적 성격과 전통적 추구가 자신의 변화를 위한 길을 준비하는 완전성을 나타내는 지표이다. 발견이 동화된 후, 과학자들은 더 넓은 범위의 자연 현상을 설명하거나 이전에 알려진 일부 현상을 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이득은 이전에 표준적인 신념이나 절차를 폐기하고 동시에 이전 패러다임의 구성 요소를 다른 구성 요소로 대체함으로써만 달성되었다. 나는 이런 종류의 변화가 정상과학을 통해 달성된 모든 발견과 관련되어 있다고 주장했지만, 세부 사항을 제외하고는 모두 예상했던 놀라운 발견만 제외했다. 여기서 우리는 새로운 이론의 창안으로 인해 발생하는 유사하지만 일반적으로 훨씬 더 큰 변화를 고려하기 시작할 것이다. 과학에서 사실과 이론, 발견과 가설은 범주적으로 영구적으로 구별되지 않는다고 이미 주장한 바 있다. 새로운 이론의 출현을 받아들이면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발견에 대한 이해도 확장하게 될 것이다. 예상할 수 있듯이, 그러한 불안은 정상과학의 퍼즐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데 지속적으로 실패함으로써 발생한다. 패러다임 변화의 특히 유명한 사례인 코페르니쿠스 천문학의 출현을 먼저 살펴보라. 행성의 위치와 분점의 세차운동과 관련하여 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로 이루어진 예측은 가능한 최고의 관측치와 결코 일치하지 않았다. 프톨레마이오스의 후계자들은 천체 관측과 뉴턴 이론을 통합하려는 유사한 시도가 18세기 뉴턴의 후계자들에게 일반적인 연구 문제를 제공했던 것과 같다. 한동안 천문학자들은 이러한 시도가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를 탄생시킨 시도만큼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특정한 불일치가 있는 경우, 천문학자들은 프톨레마이오스의 복합원 체계에 특별한 조정을 가함으로써 이를 제거할 수 있었다. 코페르니쿠스 혁명의 경우에서 그 정도가 분명하다면, 두 번째이자 다소 다른 예, 즉 라부아지에의 산소 연소 이론이 출현하기 이전의 위기로 돌아가 보겠다. 화학의 위기와 역사가들은 그 성격이나 상대적 중요성에 대해 완전히 동의하지 않는다. 다음 세기 동안 화학자들은 그 펌프와 기타 여러 가지 공압 장치를 사용하여 공기가 화학 반응의 활성 성분임에 틀림없다는 사실을 점점 더 깨닫게 되었다. 1756년 Joseph Black이 고정된 공기가 일반 공기와 지속적으로 구별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전까지 두 가스 샘플은 불순물만 구별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Black에서 Scheele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사람들은 플로지스톤 이론을 믿었고 종종 실험의 설계와 해석에 이를 사용했다. 그러나 그들의 실험의 최종 결과는 다양한 가스 샘플과 가스 특성이 너무 정교하여 플로지스톤 이론이 실험실 경험에 거의 대처할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이들 화학자 중 어느 누구도 이론을 대체해야 한다고 제안하지는 않았지만 일관되게 적용할 수는 없었다. 1770년대 초 라부아지에가 공기에 대한 실험을 시작할 무렵에는 공압 화학자의 수만큼 플로지스톤 이론의 버전이 많이 있었다. 이론 버전의 확산은 위기의 매우 일반적인 증상이다 . 코페르니쿠스도 서문에서 이에 대해 불평했다. 그러나 공압 화학에 대한 플로지스톤 이론의 모호함 증가와 유용성 감소가 라부아지에가 직면한 위기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었다. 이슬람 화학자들은 일부 금속은 구울 때 무게가 늘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17세기에 여러 연구자들은 이와 동일한 사실을 토대로 구운 금속이 대기 중 일부 성분을 흡수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17세기에는 대부분의 화학자들에게 그러한 결론이 불필요해 보였다. 그러나 18세기 동안 체중 증가 문제에 대한 이러한 초기의 적절한 대응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부분적으로는 저울이 표준 화학 도구로 점점 더 많이 사용되고 부분적으로는 공압 화학의 발전으로 반응의 기체 생성물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고 바람직해졌기 때문에 화학자들은 로스팅에 따른 체중 증가 사례를 점점 더 많이 발견했다. 동시에, 뉴턴의 중력 이론이 점진적으로 동화되면서 화학자들은 무게의 증가는 물질의 양의 증가를 의미한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그러한 결론은 플로지스톤 이론을 거부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다. 플로지스톤 이론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조정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플로지스톤은 음의 무게를 가졌을 수도 있고, 플로지스톤이 떠날 때 불입자나 다른 무언가가 구운 몸체에 들어갔을 수도 있다. 플로지스톤 이론의 다양한 버전이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정교화되었다. 공압 화학의 문제와 마찬가지로 체중 증가 문제도 플로지스톤 이론이 무엇인지 알기를 점점 더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18세기 화학의 패러다임은 여전히 ​​작업 도구로 믿고 신뢰받았지만 점차 고유한 지위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것이 인도한 연구는 위기의 또 다른 전형적인 효과인 준비 시대의 경쟁 학파에서 수행된 연구와 점점 더 유사해졌다. 


이제 세 번째이자 마지막 사례로 상대성 이론의 출현을 위한 길을 준비한 19세기 후반 물리학의 위기를 생각해 보라. 그 위기의 뿌리 중 하나는 다수의 자연철학자, 특히 라이프니츠가 절대 공간에 대한 고전적 개념의 업데이트된 버전을 유지하는 뉴턴을 비판했던 17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들은 뉴턴 이론을 자연에 적용할 때 발생한 어떤 문제에도 자신들의 견해를 연관시키지 않았다. 책 전체는 위기의 진화와 최초의 인식을 기록한다. 18세기 초반의 그것들은 물리학의 실천과 매우 다른 관계를 가졌던 19세기의 마지막 10년에야 부활한다. 상대론적 공간철학이 궁극적으로 연결될 기술적 문제는 1815년경부터 빛의 파동이론이 수용되면서 정상과학에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1890년대까지는 아무런 위기도 일으키지 않았다. 20세기 중반 동안 프레넬(Fresnel), 스톡스(Stokes) 등은 표류를 관찰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에테르 이론에 대한 수많은 명료화를 고안했다. 상황은 점차적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다시 바뀌었다. 이것은 그의 최종 버전에서 제외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그의 전자기 이론이 뉴턴 역학적 관점의 일부 표현과 호환된다고 믿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적 제안은 저자의 낙관에도 불구하고 기존 운동 이론에 점점 더 큰 위기를 안겨주었다. 따라서 맥스웰의 이론은 뉴턴의 기원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그것이 파생된 패러다임에 위기를 가져왔다. 게다가 그 위기가 가장 심각해진 지점은 우리가 방금 고려한 문제들, 즉 에테르와 관련된 운동 문제들에 의해 제공되었다. 움직이는 물체의 전자기적 거동에 대한 맥스웰의 논의에서는 에테르 항력에 대한 언급이 없었으며 그러한 항력을 그의 이론에 도입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따라서 1890년 이후 몇 년 동안 에테르에 대한 운동을 감지하고 에테르가 맥스웰의 이론에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실험적, 이론적 시도가 오랫동안 이어졌다. 후자는 특히 로렌츠(Lorentz)와 피츠제럴드(Fitzgerald)의 여러 유망한 출발을 낳았지만, 또한 여전히 다른 수수께끼를 드러냈고 마침내 우리가 이전에 위기에 수반되는 것으로 발견한 경쟁 이론의 확산을 초래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이 1905년에 등장한 것은 바로 그러한 역사적 배경에 반대되는 것이다. 유일한 완전한 기대는 또한 가장 유명한 것인데, Aristarchus의 제안이 만들어졌을 때, 훨씬 더 합리적인 지구 중심 시스템은 태양 중심 시스템이 아마도 충족시킬 수도 있는 요구 사항이 없었다.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의 전체적인 발전은 승리와 실패를 포함하여 아리스타르코스의 제안 이후 몇 세기에 걸쳐 이루어졌다. 게다가 아리스타르코스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뚜렷한 이유도 없었다. 코페르니쿠스의 보다 정교한 제안조차도 프톨레마이오스의 시스템보다 더 단순하지도 정확하지도 않았다. 그러한 상황에서 천문학자들을 코페르니쿠스로 이끈 요인 중 하나는 애초에 혁신을 담당했던 인식된 위기였다. 패러다임이 제공하는 도구가 그것이 정의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계속해서 입증되는 한, 과학은 이러한 도구를 확실하게 사용함으로써 가장 빠르게 움직이고 가장 깊이 침투한다. 대답의 일부는 중요하면서도 명백하며 심각하고 장기적인 변칙 현상에 직면했을 때 과학자들이 결코 하지 않는 일을 먼저 지적함으로써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믿음을 잃기 시작하고 대안을 고려하기 시작할지라도 그들을 위기로 몰아넣은 패러다임을 포기하지 않는다. 즉, 과학철학의 용어로는 변칙성을 반증례로 취급하지만 그들은 변칙성을 반증례로 취급하지 않는다. 부분적으로 이러한 일반화는 위에 제시된 사례, 더 광범위하게는 아래에 제시된 사례를 바탕으로 한 역사적 사실의 진술일 뿐이다. 과학적 발전에 대한 역사적 연구를 통해 아직 밝혀진 어떤 과정도 자연과의 직접적인 비교에 의한 반증이라는 방법론적 고정관념과 전혀 닮지 않았다. 이 말은 과학자들이 과학 이론을 거부하지 않는다거나 그들이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경험과 실험이 필수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의 패러다임을 거부하는 결정은 항상 동시에 다른 패러다임을 받아들이는 결정이며, 그 결정으로 이어지는 판단에는 두 패러다임을 자연과 서로 비교하는 것이 포함된다. 게다가, 과학자들이 변칙이나 반례에 직면했기 때문에 패러다임을 거부한다는 것을 의심하는 두 번째 이유가 있다. 따라서 내 현재 요점이 정확하다면 기껏해야 위기를 조성하거나 더 정확하게는 이미 존재하는 위기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들 스스로는 그 철학적 이론을 반증할 수도 없고 반증하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이론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변칙 현상에 직면했을 때 과학자들이 이미 보았던 일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명백한 갈등을 제거하기 위해 수많은 표현과 이론의 임시 수정을 고안할 것이다. 새로운 과학 지식 이론 내에서 볼 때, 그것들은 동어반복, 즉 그렇지 않은 상황에 대한 진술과 매우 흡사해 보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뉴턴의 운동 제2법칙은 달성하기 위해 수세기 동안 어려운 사실적, 이론적 연구가 필요했지만 뉴턴의 이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관찰해도 반박할 수 없는 순전히 논리적인 진술처럼 행동한다는 것이 종종 관찰되었다. 과학자들이 변칙이나 반례에 직면했을 때 패러다임을 거부하지 못한다는 일반화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없었고 여전히 과학자로 남아있다. 역사가 그들의 이름을 기록할 것 같지는 않지만, 어떤 사람들은 위기를 견디지 ​​못해서 사막 과학으로 내몰린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일단 자연을 보는 첫 번째 패러다임이 발견되면, 패러다임이 없는 연구는 있을 수 없다. 다른 패러다임을 동시에 대체하지 않고 하나의 패러다임을 거부하는 것은 과학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 행위는 패러다임이 아니라 인간을 반영한다. 반대로, 우리가 이전에 정상과학을 구성하는 퍼즐이라고 불렀던 것은 과학 연구의 기초를 제공하는 패러다임이 모든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존재한다. 전적으로 도구적인 문제를 제외하고, 정상 과학이 수수께끼로 보는 모든 문제는 다른 관점에서 보면 반대 사례로, 따라서 위기의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코페르니쿠스는 대부분의 프톨레마이오스의 다른 후계자들이 관찰과 이론 사이의 일치에서 수수께끼로 보았던 것을 반대 사례로 보았다. Lavoisier는 Priestley가 플로지스톤 이론의 명료화에서 성공적으로 해결된 퍼즐로 보았던 것을 반례로 보았다. 대신, 패러다임의 확산을 통해 위기는 궁극적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일반적인 퍼즐 풀기 규칙을 느슨하게 한다. 대신, 그 목적은 패러다임의 타당성을 가정해야 하는 퍼즐을 푸는 것이다. 해결책을 달성하지 못하면 이론이 아니라 과학자만 불신하게 된다. 과학 교과서를 읽는 사람은 그렇게 하는 사소한 이유만 고려하면 그 적용을 이론에 대한 증거, 즉 이론을 믿어야 하는 이유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과학도들은 증거 때문에가 아니라 교사와 텍스트의 권위에 관한 이론을 받아들인다. 텍스트에 제공된 적용은 증거로 존재하지 않지만 이를 학습하는 것은 현재 실습의 기반에서 패러다임을 학습하는 것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적용이 증거로 제시된다면 대안적인 해석을 제안하거나 과학자들이 패러다임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 문제를 논의하는 텍스트의 실패 자체가 저자를 극도의 편견으로 유죄 판결하게 될 것이다.


V.방금 말한 내용은 이론의 다른 적용에서 경험한 것보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불일치라도 매우 심오한 반응을 이끌어낼 필요가 없다는 것을 나타낸다. 1750년 Clairaut는 응용 수학만이 잘못되었으며 뉴턴 이론이 이전과 동일하게 유지될 수 있음을 보여줄 수 있었다. 단순한 실수가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경우에도 지속적이고 인식된 이상 현상이 항상 위기를 유발하는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뉴턴 이론의 예측과 음속, 수성의 운동 사이의 불일치가 인정되었기 때문에 누구도 뉴턴 이론에 심각하게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으며, 위기에 따른 불쾌감을 불러일으킬 만큼 충분히 근본적인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변칙성이 위기를 불러일으키려면 일반적으로 단순한 변칙성 그 이상이어야 한다. 에테르 항력의 문제가 맥스웰의 이론을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때때로 이상 현상은 패러다임의 명백하고 근본적인 일반화에 대해 분명히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또는 코페르니쿠스 혁명에서와 같이 근본적인 의미가 뚜렷하지 않은 변칙은 그것이 금지하는 적용이 특히 실용적인 중요성을 갖는 경우(이 경우 달력 디자인 및 점성술에 대한) 위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아마도 변칙성을 특별히 긴급하게 만들 수 있는 다른 상황이 여전히 있을 것이며, 일반적으로 이러한 상황 중 몇 가지가 결합될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이미 코페르니쿠스가 직면한 위기의 원인 중 하나가 천문학자들이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 남아 있는 불일치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던 단순한 시간의 길이였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러한 이유 또는 이와 유사한 다른 이유로 인해 변칙 현상이 정상 과학의 또 다른 수수께끼 이상으로 보일 때, 위기와 비범 과학으로의 전환이 시작되었다. 이제 변칙성 자체가 전문 분야에서 더 일반적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다른 모습의 일부는 단순히 과학적 조사의 새로운 고정점에서 비롯된다. 훨씬 더 중요한 변화의 원천은 문제에 대한 집중적인 관심을 통해 가능해진 수많은 부분적 해결책의 다양한 성격이다. 저항성 문제에 대한 초기 공격은 패러다임 규칙을 매우 밀접하게 따랐을 것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저항으로 인해 점점 더 많은 공격이 패러다임의 사소하거나 그다지 사소하지 않은 표현을 포함하게 될 것이다. 그 중 두 가지가 완전히 똑같지는 않고 각각 부분적으로 성공했지만 그룹이 패러다임으로 받아들일 만큼 충분하지는 않다. 이러한 다양한 표현의 확산을 통해 정상 과학의 규칙은 점점 더 흐려진다. 여전히 패러다임이 존재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완전히 동의하는 실무자는 거의 없다. 해결된 문제에 대한 이전의 표준 솔루션도 문제가 된다. 심각한 경우에는 관련 과학자들이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기도 한다. 새로운 양자 이론이 나올 무렵, 물리학은 다시 몹시 혼란스러워지고 있었다. 붕괴에 대한 그러한 명시적인 인식은 극히 드물지만 위기의 영향은 전적으로 위기의 의식적 인식에 달려 있지 않았다. 이 점에서 위기 상황에서의 연구는 패러다임 준비 기간 동안의 연구와 매우 유사하다. 단, 전자의 경우 차이의 위치가 더 작고 더 명확하게 정의된다는 점만 다르다. 다른 경우에는 문제가 명백히 급진적인 새로운 접근 방식에도 저항한다. 그러면 과학자들은 자신이 속한 분야의 현재 상태에서는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문제는 분류되어 더욱 발전된 도구를 사용하는 미래 세대를 위해 따로 남겨두었다. 또는 끝으로, 여기서 우리가 가장 우려하는 경우는 패러다임의 새로운 후보의 출현과 이를 수용하기 위한 계속되는 싸움으로 위기가 끝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1925년 직전 몇 년 동안의 양자 역학의 위기에서 오래된 패러다임의 시온, 오히려 그것은 새로운 기초로부터 해당 분야를 재구성하는 것이며, 해당 분야의 가장 기본적인 이론적 일반화뿐만 아니라 많은 패러다임 방법 및 적용을 변경하는 재구성이다. 전환 기간 동안 기존 패러다임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 사이에는 크지만 결코 완전하지 않은 중복이 있을 것이다. 앞선 예측은 우리가 위기를 새로운 이론의 출현에 대한 적절한 전주곡으로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우리가 발견의 출현을 논의할 때 동일한 과정의 소규모 버전을 이미 조사했기 때문이다. 위기가 심각하게 전개되거나 명시적으로 인식되기 전에 적어도 초기 단계에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그의 봉인된 메모는 플로지스톤 이론의 무게 관계에 대한 최초의 철저한 연구가 끝난 지 1년도 채 안 되어 프리스틀리의 출판물이 공압 화학의 위기의 전체 범위를 드러내기 전에 프랑스 아카데미에 기탁되었다. 빛의 파동 이론에 대한 영의 첫 번째 설명은 광학 분야의 위기가 커지는 초기 단계에 나타났다. 영의 도움 없이 이 사건이 10년 이내에 국제 과학 스캔들로 성장했다는 점을 제외하면 거의 눈에 띄지 않을 것이다. 그가 처음 글을 썼을 때 이와 같은 경우, 패러다임의 사소한 붕괴와 정상과학에 대한 규칙의 최초의 모호화는 누군가에게 해당 분야를 보는 새로운 방식을 유도하기에 충분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 역사가는 비범한 과학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최소한 몇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이론적으로 명백히 근본적인 변칙성에 직면했을 때, 과학자의 첫 번째 노력은 종종 그것을 더 정확하게 분리하고 구조를 제공하는 것이다. 비록 지금은 그것이 완전히 옳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는 정상 과학의 규칙을 그 어느 때보다 더 어렵게 밀어붙여 어려운 영역에서 그것이 어디에서 얼마나 멀리 작동할 수 있는지 알 수 있게 할 것이다. 동시에 그는 결과를 미리 알 수 있다고 생각했던 실험에서 보여주었던 것보다 분석을 더 눈에 띄게 만들고 아마도 더 암시적으로 만드는 방법을 모색할 것이다. 그리고 후자의 노력에서 그는 과학의 패러다임 이후 발전의 다른 어떤 부분보다 더 우리의 가장 널리 퍼진 과학자의 이미지와 거의 비슷하게 보일 것이다. 동시에 어떤 종류의 이론 없이는 어떤 실험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위기에 처한 과학자는 성공할 경우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가는 길을 공개할 수 있고, 실패할 경우 상대적으로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추측적 이론을 생성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화성의 움직임에 대한 케플러의 오랜 투쟁에 대한 설명과 새로운 가스의 확산에 대한 프리스틀리의 반응에 대한 설명은 변칙성에 대한 인식으로 인해 발생하는 보다 무작위적인 연구의 전형적인 예를 제공한다. 그러나 아마도 가장 좋은 예시는 장 이론과 기본 입자에 대한 현대 연구에서 나온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물리학의 다른 많은 연구와 마찬가지로, 이 실험은 부분적으로 여전히 확산되어 있는 일련의 변칙 현상의 원인을 국지화하고 정의하려는 시도였다. 내가 다른 곳에서 보여주었듯이, 갈릴레오, 아인슈타인, 보어 등의 저술에서 그토록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분석적 사고 실험은 위기의 근원을 명확하게 분리하는 방식으로 기존 지식에 낡은 패러다임을 실험실에 노출시키도록 완벽하게 계산되었다. 이러한 특별한 절차를 단독으로 또는 함께 배포하면 또 다른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문제가 있는 좁은 영역에 과학적 관심을 집중하고 실험적 변칙성을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있도록 과학적 사고를 준비함으로써 위기는 종종 새로운 발견을 확산시킨다. 원형 디스크의 그림자 중심에 있는 광점과 같은 다른 것들은 새로운 가설로부터의 예측이었고, 그 성공은 그것을 이후 작업의 패러다임으로 바꾸는 데 도움이 되었다.  


1895년경부터 양자역학의 출현에 지속적으로 수반된 다양한 발견에 대해 유사한 설명이 주어질 수 있다. 특별한 연구에는 여전히 다른 표현과 효과가 있어야 하지만 이 분야에서 우리는 질문해야 할 질문을 거의 발견하기 시작하지 않았다. 앞선 발언은 위기가 어떻게 고정관념을 완화하는 동시에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에 필요한 증분 데이터를 제공하는지 보여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때로는 특별한 연구가 변칙성에 부여한 구조에서 갑자기, 때로는 한밤중, 위기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의 마음 속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형태가 예시되기도 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이러한 근본적인 창안을 성취한 사람들은 거의 항상 아주 어리거나 패러다임을 바꾸는 분야에 아주 새로운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 점을 명시적으로 설명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분명히 이들은 정상 과학의 전통적인 규칙에 대한 사전 실천에 거의 헌신하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특히 그러한 규칙이 더 이상 플레이 가능한 게임을 정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에 따른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은 과학 혁명이며, 우리는 마침내 이 주제에 직접 접근할 준비가 되었다. 변칙성의 개념이 처음 도입되기 전에는 '혁명'과 '비범한 과학'이라는 용어가 같은 의미로 여겨졌을 것이다. 우리는 유사한 순환성이 과학 이론의 특징이라는 것을 곧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에세이의 이 부분과 앞의 두 부분은 정상적인 과학 활동의 붕괴에 대한 수많은 기준, 즉 붕괴가 혁명에 의해 성공하는지 여부에 전혀 의존하지 않는 기준을 제시했다. 기초 과학 연구에서 청소년의 역할에 대한 이러한 일반화는 진부할 정도로 흔하다. 더욱이, 과학 이론에 대한 근본적인 기여의 거의 모든 목록을 한눈에 살펴보면 인상주의적인 확증을 얻을 수 있다. 경쟁적인 표현의 확산, 무엇이든 시도하려는 의지, 노골적인 불만의 표현, 철학에 대한 의지와 기본에 대한 논쟁, 이 모든 것은 정상 연구에서 비범 연구로의 전환의 증상이다. 정상과학의 개념은 혁명의 존재보다는 비범의 존재에 달려 있다. 특히, 앞의 논의는 여기서 과학 혁명은 오래된 패러다임이 양립할 수 없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체 또는 부분적으로 대체되는 비누적적 발전 에피소드로 간주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병렬성의 한 측면은 이미 명백해야 한다. 정치 혁명은 종종 정치 공동체의 한 부분에 국한되어 기존 제도가 부분적으로 조성한 환경으로 인해 제기된 문제를 적절하게 해결하는 것을 중단했다는 인식이 커짐에 따라 시작된다. 마찬가지로, 과학 혁명은 다시 종종 과학계의 좁은 하위 부문으로 제한되는, 기존 패러다임이 그 패러다임 자체가 가지고 있던 자연의 측면을 탐구하는 데 더 이상 적절하게 기능하지 않는다는 점점 커지는 인식에 의해 시작된다. 정치적, 과학적 발전 모두에서 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오작동 의식은 혁명의 전제조건이다. 외부인에게 그것은 20세기 초 발칸 혁명처럼 발전 과정의 정상적인 부분으로 보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천문학자들은 X선을 단순한 지식의 추가로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 왜냐하면 그들의 패러다임은 새로운 방사선의 존재에 영향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방사선 이론이나 음극선관을 연구한 Kelvin, Crookes 및 Roentgen은 X선의 출현으로 인해 패러다임이 다른 패러다임을 만들면서 필연적으로 위반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광선은 정상적인 연구에서 처음으로 문제가 발생한 경우에만 발견될 수 있다. 정치적 발전과 과학적 발전 사이의 유사성에 대한 이러한 유전적 측면은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유사점은 첫 번째의 중요성이 좌우되는, 더 심오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 정치 혁명은 정치 제도 자체가 금지하는 방식으로 정치 제도를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성공은 다른 제도를 위해 한 제도의 부분적 포기를 필요로 하며, 그 사이에 사회는 제도에 의해 완전히 지배되지 않는다. 처음에 정치 제도의 역할을 약화시키는 것은 위기뿐이다. 우리가 이미 패러다임의 역할을 약화시키는 것을 보아왔듯이 말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정치 생활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그 안에서 점점 더 기이하게 행동한다. 그런 다음 위기가 심화됨에 따라 이들 개인 중 다수는 새로운 제도적 틀에서 사회를 재건하기 위한 구체적인 제안에 전념한다. 그들은 정치적 변화가 달성되고 평가되는 제도적 매트릭스가 달라 혁명적 차이를 판단하기 위한 초제도적 틀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혁명적 갈등의 당사자들은 마침내 권력을 포함한 대중 설득 기술에 의지해야 한다. 혁명은 정치 제도의 진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그 역할은 혁명이 부분적으로 정치 외적이거나 제도 외적인 사건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이 에세이의 나머지 부분은 패러다임 변화에 대한 역사적 연구가 과학의 진화에서 매우 유사한 특성을 드러낸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경쟁하는 정치 제도 사이의 선택과 마찬가지로, 경쟁하는 패러다임 사이의 선택도 양립할 수 없는 공동체 생활 방식 사이의 선택임이 입증되었다. 그러한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선택은 단순히 정상과학의 특징인 평가 절차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며, 결정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절차는 부분적으로 특정 패러다임에 의존하고 그 패러다임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패러다임이 패러다임 선택에 관한 논쟁에 참여할 때, 패러다임의 역할은 필연적으로 순환적이다. 각 그룹은 자신의 패러다임을 사용하여 해당 패러다임을 옹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러다임을 옹호하면서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사람은 자연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채택하는 사람들에게 과학적 행보가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보여줄 수 있다. 패러다임 선택에 관한 이 문제가 논리와 실험만으로는 결코 명확하게 해결될 수 없는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우리는 전통적인 패러다임의 지지자와 혁명적 계승자를 구분하는 차이점의 본질을 간략하게 조사해야 한다. 먼저 그러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과학 지식의 논리적 구조에서 파생되지 않는다는 점에 유의하라. 원칙적으로 과거 과학적 행보의 어떤 부분도 파괴적으로 반영하지 않고 새로운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이론은 이전 이론과 충돌할 필요가 없다. 양자 이론이 20세기 이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아원자 현상을 다루듯이, 그것은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현상만을 독점적으로 다룰 수도 있다. 또는 새로운 이론은 단순히 이전에 알려진 이론보다 더 높은 수준의 이론일 수도 있다. 즉, 실질적인 변경 없이 낮은 수준의 이론 전체를 함께 연결한 이론일 수도 있다. 오늘날 에너지 보존 이론은 역학, 화학, 전기, 광학, 열 이론 등 간의 연결을 제공한다. 


결론


앞에서 우리는 과학 축적의 관점이 지식을 마음에 의해 원시 감각 데이터에 직접 배치된 구성으로 간주하는 지배적인 인식론과 얼마나 밀접하게 얽혀 있는지 발견했으며, 효과적인 과학 교육학의 기술에 의해 동일한 역사학 체계에 제공되는 강력한 지원을 검토할 것이지만, 그 이상적인 이미지의 엄청난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과연 과학의 이미지일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패러다임 이전 시대 이후 모든 새로운 이론과 거의 모든 새로운 종류의 현상이 동화되기 위해서는 실제로 이전 패러다임의 파괴와 그에 따른 과학 사상의 경쟁 학파 간의 갈등이 필요했다. 역사적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과학이 그 누적성에 대한 우리의 이미지가 제시하는 이상을 지향하지 않는다는 점을 의심해야 한다. 원칙적으로 새로운 이론이 나타날 수 있는 현상에는 세 가지 유형만 있다. 첫 번째는 기존 패러다임에 의해 이미 잘 설명된 현상으로 구성되며, 이러한 현상은 이론 구성의 동기나 출발점을 거의 제공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결과로 나온 이론은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다. 왜냐하면 자연은 차별의 근거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상의 두 번째 부류는 그 성격이 기존 패러다임에 의해 표시되지만 그 세부사항은 추가적인 이론 표현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는 것으로 구성된다. 이것은 과학자들이 대부분의 시간 동안 연구를 진행하는 현상이지만, 그 연구의 목표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창안보다는 기존 패러다임의 명료화이다. 이러한 표현 시도가 실패할 때만 과학자들은 세 번째 유형의 현상, 즉 기존 패러다임에 동화되기를 완고하게 거부하는 것이 특징인 인정된 변칙적 현상에 직면하게 된다. 이 유형만으로도 새로운 이론이 탄생한다. 패러다임은 변칙 현상을 제외한 모든 현상에 과학자의 시야에서 이론에 따라 결정된 위치를 제공한다. 그러나 기존 이론과 자연의 관계에서 이상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이론이 요구된다면, 성공적인 새 이론은 이전 이론에서 파생된 예측과 다른 예측을 어딘가에서 허용해야 한다. 대신, 뉴턴 역학과 열에 대한 칼로리 이론의 최근 공식화된 결과 사이의 비호환성이 핵심 요소인 위기에서 등장했다. 칼로리 이론이 거부된 후에야 에너지 보존이 과학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한동안 과학의 일부가 된 후에야 이전 이론과 충돌하지 않는 논리적으로 더 높은 유형의 이론으로 보일 수 있었다. 자연에 대한 믿음의 이러한 파괴적인 변화 없이 어떻게 새로운 이론이 나타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논리적 포괄성은 계속되는 과학 이론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여전히 허용 가능한 관점이지만, 역사적으로는 타당하지 않다. 초기 논리 실증주의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그 후계자들에 의해 단호히 거부되지 않은 그러한 해석은 수용된 이론의 범위와 의미를 제한하여 동일한 자연 현상 중 일부에 대해 예측한 이후의 이론과 충돌할 가능성이 없다. 과학 이론의 이러한 제한된 개념에 대한 가장 잘 알려져 있고 가장 강력한 사례는 현대 아인슈타인 역학과 뉴턴의 프린키피아에서 유래한 오래된 역학 방정식 사이의 관계에 대한 논의에서 나타난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이러한 조건과 다른 몇 가지 조건에 따라 뉴턴 이론은 아인슈타인 이론에서 파생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며 따라서 아인슈타인 이론은 특별한 경우라는 인식이 있어야만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이론도 그 특별한 경우 중 하나와 충돌할 수 없다는 주장에 반론이 계속된다. 아인슈타인의 과학이 뉴턴의 동역학을 잘못 만든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일부 뉴턴주의자들이 뉴턴 이론이 완전히 정확한 결과를 산출했거나 그것이 매우 높은 상대 속도에서 타당하다고 주장할 정도로 경솔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러한 주장에 대한 어떤 증거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러한 주장을 할 때 과학의 기준을 배반했다. 뉴턴의 이론이 타당한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는 진정한 과학 이론인 한, 그것은 여전히 ​​그렇다. 이러한 단순한 인간의 사치를 제거한 뉴턴 이론은 결코 도전을 받은 적이 없고 도전받을 수도 없다. 이 주장의 일부 변형은 유능한 과학자들로 구성된 중요한 그룹이 사용한 모든 이론을 공격에 면역되게 만드는 데 매우 충분하다. 예를 들어, 많이 비난받는 플로지스톤 이론은 수많은 물리적, 화학적 현상에 질서를 부여했다. 또한, 플로지스톤 이론은 탄소와 황과 같은 물질이 연소되어 산이 형성되는 여러 반응을 설명했다. 이것이 플로지스톤 이론가들이 그들의 이론에 대해 주장한 유일한 현상이라면, 그 이론은 결코 도전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모든 범위의 현상에 성공적으로 적용된 이론에 대해서는 유사한 주장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이론을 저장하려면 이론의 적용 범위를 이미 가지고 있는 실험적 증거가 다루고 있는 현상과 관찰의 정확성으로 제한해야 한다. 현재의 형태에서도 이러한 제한은 과학자가 자신의 연구에서 해당 연구가 특정 분야에 진입하거나 과거의 이론 전개에서 전례가 없는 정확도를 추구할 때마다 해당 이론에 의존하는 것을 금지한다. 패러다임에 대한 헌신 없이는 정상과학도 존재할 수 없다. 이론의 적법한 적용 범위에 대한 실증주의적 제한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어떤 문제가 근본적인 문제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과학계에 알려주는 메커니즘은 매우 다른 종류의 분석을 통해 도달한 결론을 비교한다. 변화는 작동을 멈춰야 한다. 그리고 그런 일이 발생하면 공동체는 필연적으로 준비 패러다임 상태, 즉 모든 구성원이 과학을 추구하지만 총 생산물이 과학과 거의 닮지 않은 상태로 돌아갈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증주의자의 주장에는 우리에게 혁명적 변화의 본질을 즉시 다시 소개하는 논리적 공백이 있다는 것이며, 이 빈틈을 비집고 상대성 이론의 법칙을 함께 구현한다.


참고문헌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Second Edition, Enlarged / Thomas S. Ku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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