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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

조지아의 정국 혼란: 서방과 러시아의 대리전/정세진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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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의 꿈당, 총선 4연속 승리
2024년 10월 26일 개최된 총선 이후 조지아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집권당인 ‘조지아의 꿈(Georgian Dream)’ 당과 조지아 4개 야당이 치열한 정치적 투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조지아의 꿈당은 지난 10월 총선에서 전체 투표수의 약 54%를 얻으며 4회 연속 승리를 기록했다. 전체 150개의 의석 중 조지아의 꿈당은 직전 총선 결과인 90석보다는 적지만 과반을 훌쩍 넘는 89석을 차지했다. 4개 야권 정당이 뭉친 야권 연합은 총 61석을 획득했다. 야권은 광범위한 부정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총선 결과에 강력히 반발했고, 선거 다음 날인 10월 27일 선거관리위원회의 결과 발표에 불복을 선언했다. 
  
총선 결과가 알려지자 10월 28일 수도인 트빌리시에서는 수만 명의 시민들이 조지아와 EU깃발을 흔들면서 시위를 벌였다. 친서방 성향의 무소속 살로메 주라비슈빌리(Salome Zourabichvili) 전 대통령도 10월 27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번 총선은 국민의 표를 훔친 일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러시아의 ‘특별작전’으로 이러한 결과가 나타났다고 주장하며 전 국민이 시위에 참여할 것을 촉구했다. 주라비슈빌리 전 대통령은 2020년 조지아의 의원내각제 도입 이후 사실상의 실권을 여당 대표인 이라클리 코바히제(Irakli Kobakhidze) 총리에게 넘겨준 상황이다. 야당 지도자인 기오르기 바샤제(Giorgi Vashadze)도 야당은 불법적 의회에 불참할 것이며, 국제 선거관리단의 진행 하에 총선을 다시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
 
선거 결과가 논란이 된 것은 출구조사를 바탕으로 한 전망치와 실제 결과가 큰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포뮬러 뉴스(Formula News)’ 등 야권 성향 매체는 출구조사 결과 야권 4당 연합이 전체 의석수인 150석 중 절반을 넘는 83석을 차지하면서 승리할 것으로 예측했다. 총선 전 여론조사에서는 친유럽 성향의 야권이 주장하던 유럽연합(EU) 가입에 대한 찬성이 약 8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예상을 빗나간 결과에 2012년 총선에서 조지아의 꿈당에 패해 정권을 빼앗긴 통합국민운동(UNM) 측은 가장 크게 반발했다. UNM은 기자회견을 통해 “선거관리위원회와 여당이 조지아 국민의 승리를 훔쳤다”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UNM의 티나 보쿠차바(Tina Bokuchava) 대표는 “조지아인은 조지아의 유럽적 미래에 표를 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선관위에서 행한 선거 조작 결과를 수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또다른 야당인 변화를 위한 연합(Coalition for Change)의 니카 그바라미아(Nika Gvaramia) 대표는 이번 총선이 ‘헌법적 쿠데타’라고 강조하며, 총선 결과에 불복한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조지아의 독립 선거 모니터링 단체인 공정 선거 및 민주주의를 위한 국제사회(ISFED: International Society for Fair Elections and Democracy)는 유권자 협박, 표 매수 등의 부정행위가 여러 건 적발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지아 선관위는 총선이 평화롭고 공정하게 실시되었다고 재차 강조했다. 
 
한편 러시아에서 벌인 사업이 크게 성공하여 백만장자가 된 사업가이자 조지아의 꿈당을 창당한 비지나 이바니슈빌리(Bidzina Ivanishvili) 명예위원장은 선거 결과와 관련하여 “어려운 상황에서 거둔 승리는 세계적인 사건이며 국민의 뛰어난 역량을 제시하는 지표”라고 평가했다. 조지아의 EU 가입은 헌법에 명시된 국가 정책으로, 그동안 조지아의 꿈당은 집권당으로서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서 실용적인 노선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에 우호적인 쪽으로 다소 기울어진 입장을 보였는데, 특히 2023년 제정된 ‘외국의 영향 투명성(transparency of foreign influence) 법’은 러시아가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이나 시민단체를 탄압하는 데에 활용하고 있는 ‘외국 대리인법(foreign agent law)’과 거의 동일하다. 전국적인 반대 시위와 EU 및 서방의 제재 위협에도 불구하고 외국의 영향 투명성 법안이 통과된 이후 야권연합은 조지아의 꿈당이 EU 가입을 방해하고 있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총선에서 야권연합이 승리해야만 조지아의 EU 가입이 추진될 수 있는 상황에서 친러 성향 여당의 승리라는 총선 결과는 조지아의 운명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다.
 
2024년 10월 총선의 정당 별 주요 정책 공약
 
 
출처: civil.ge, 1TV.ge, georgiatoday.ge 등  
 
 
 
총선 결과에 대한 서방의 반응 
조지아의 2024년 총선 관련하여 서방은 일단 부정선거로 의심했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Organization for Security and Co-operation in Europe), 미국의 국제공화연구소(IRI: International Republican Institute), 국가민주주의연구소(NDI: National Democratic Institute) 등이 선거에서 심각한 위법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부정 사례로는 투표함 조작, 뇌물 거래, 유권자 위협, 투표소 근처의 신체 폭력 등이었다. 샤를 미셸(Charles Michel)  EU 상임의장도 자신의 SNS를 통해 “우리는 조지아당국에서 부정선거 의혹을 신속하고 독립적으로 조사하고 해결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유럽 위원회는 조셉 보렐(Joseph Borell) 당시 EU 외교·안보 고위 대표와 공동 성명을 발표했는데, “EU는 조지아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훼손하고 EU의 설립 가치와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법률은 폐지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며 우회적으로 조지아 정부를 비판했다. 국제 선거 감시단체도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신속한 규명을 촉구했다. 유럽안보협력기구는 조지아의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우려를 밝혔으며, EU 또한 11월 8일 부다페스트에서 열리는 비공식 EU 정상회의에서 조지아의 부정선거 문제를 논의했다. 유럽의회는 10월 28일 스트라스부르 회의에서 관련 결의안을 채택했는데, 조지아 선거가 자유롭고 공정하지 않았으며 1년 이내 국제기관의 감독하에 재선을 치러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해당 결의안에는 EU가 코바히제 총리와 여당 관계자 등을 제재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토니 블링컨(Tony Blinken) 당시 미국 국무장관은 10월 27일 성명을 통해 조지아 총선이 국제규범을 위반했다고 지적하고 전면적인 조사 요구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블링컨 장관은 선거전에 부정행위가 있었으며, 폭력사태도 산발적으로 있었다고 지적했다. 블링컨 장관은 집권당이 공적자금 오용, 투표 매수, 유권자 협박을 자행했다는 보도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조지아 정치 지도자들이 법치주의를 존중하고 자유 훼손의 법률 폐지와 선거 과정의 결함을 해결해줄 것을 촉구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서방의 부정선거와 외세 개입 의혹에 대해 러시아는 조지아 총선 개입설을 강력히 부인했다. 10월 28일 드미트리 페스코프(Dmitry Peskov) 크렘린궁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조지아의 부정선거 주장을 강력히 부인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러시아는 조지아 내정에 간섭할 의도가 전혀 없으며, 도리어 서방이 투표 결과에 영향을 미치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친러 법안 도입과 민주주의 후퇴 논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서방이 도입한 러시아 제재에 조지아는 동조하지 않았다. 오히려 2024년 6월 조지아는 야당과 국민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외국대리인법과 유사한 외국의 영향 투명성 법을 도입했는데, 조지아 정부는 반정부 성향의 언론, 비정부기구(NGO) 등을 외국대리인으로 지정했다. 외국의 영향 투명성 법은 기금의 20% 이상을 외국에서 받는 조직이나 단체를 외세의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으로 간주하고, 모든 활동을 정부에 보고하며 자금 집행 내역 등을 정부에 제출하도록 한다. 법안을 준수하지 않을 시에는 최대 5년 이하의 징역이 가능하며 미등록시 최대 9,600달러(약 1,376만 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이 법안으로 인해 외국의 지원을 받는 독립 언론과 비정부기구(NGO)의 활동은 대폭 제한되며, 정치적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는 정부에 비판적인 조직과 정당을 무력화시키는 수단으로 서방 단체들에 대한 제재 효과를 가지며 결국 친러시아 법안이라고 할 수 있다. 
 
조지아 야권과 시민들은 집권 여당이 소위 ‘러시아식 법’으로 정부 비판 세력을 압박하고 친러시아 정치 노선을 노골화한다며 이 법안의 도입에 강력히 반발했다. 이번 발의는 두 번째 시도로, 2023년 최초 도입 시도 당시에도 이 법안은 국민과 야당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통과되지 못한 바 있다. 법안 통과 이후 조지아 사회는 ‘친서방 대 친러시아’로 더 확연히 갈라져 법안을 반대하는 야당과 시민들 간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총선 결과 어떤 정당 그룹이 승리할 것인지 조지아 국내외에서 큰 관심이 있었던 이유이기도하다. 만약 야권이 승리한다면 EU 가입과 관련 서방과 거리를 좁혀 나갈 수 있을 것이지만, 여권이 승리한다면 조지아가 러시아식 권위주의 국가 노선으로 나아갈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외국의 영향 투명성 법이 통과된 이후 비자 없이 조지아인의 러시아 방문이 가능하도록 했고, 총선 이후 조지아의 꿈당은 꾸준히 친러 성향을 강화하고 있다. EU는 이 법안이 전적으로 민주주의에 역행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조지아의 EU 가입 절차를 중단했다. 
 
한편 2025년 3월 3일 조지아 의회는 ‘외국요원등록법(FARA)’을 1차 독회에서 승인했다. 이는 논란이 되었던 외국의 영향 투명성 법을 강화 및 확장한 것으로, 2025년 4월 4일 채택될 것으로 전망되며, 채택일로부터 60일 이후에  발효된다.2) 
 
총선 이후 조지아 정국의 방향성
EU는 2023년 12월 조지아에 EU 가입 후보국 지위를 부여했다. 그러나 조지아가 러시아식 언론통제법 도입을 강행하자 2024년 7월 EU 가입 절차를 잠정 중단하는 결정을 내렸다. EU는 10월 30일 ‘2024 확장(Enlargement) 정책’ 보고서를 채택하였는데, 이 보고서는 EU 신규 가입 희망국의 개혁 진척 상황을 평가해서 연간 단위로 발표되는 것으로 해당 보고서에는 조지아에 대한 EU 가입 절차가 현재 중단되었으며 EU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 법률의 개선과 불투명한 선거 제도의 개혁이 시행되지 않으면 EU 가입 협상 개시 권고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조지아 정부도 계속되는 EU로부터의 압박에 대응해 새 의회 임기 내에 EU 회원국 가입 문제를 국가 정책의 현안에 포함시키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11월 28일 코바히제 총리는 2028년 말까지 EU 회원국 가입 협상 개시 문제를 국정 의제에 포함하지 않기로 결정했으며, EU의 예산보조금도 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의 입장은 EU 회원국이 되기 위해 정치 개혁을 요구해 온 EU와 거리를 두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코바히제 총리가 EU 가입 절차를 2028년까지 중단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자 야권과 시민들은 또다시 격렬한 시위에 돌입했다. 연일 수만 명의 시위대가 시위를 벌였으며, 경찰은 물대포, 최루탄을 이용해 시위대를 진압했다. EU와 미국무부는 정부의 시위대 탄압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EU 가입을 둘러싼 조지아 내 갈등은 서방과 러시아 간 대리전 양상으로 전개되는 모습을 보였다. 12월 1일 출범한 EU 집행위원회는 성명을 통해 조지아 국민이 거리로 뛰쳐나와 EU 가입 열망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하며, 시위를 진압하는 조지아 정부를 규탄하고 유럽과 민주주의의 미래를 향한 시민들에 대한 폭력을 중단하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특히 EU는 ‘조지아 국민과 유럽의 미래를 향한 선택을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조지아의 외교·국방·교육 부문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수백 명과 여러 판사들이 정부의 EU 협상 중단 결정에 항의하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외에 조지아 외교관 200여 명은 정부의 조치는 헌법에 위반되고 국가를 국제적 고립으로 이끌 것이라고 정부를 비난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러시아의 2인자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Dmitry Medvedev) 국가안전보장회의 부의장은 자신의 SNS에 “조지아도 우크라이나를 따라 어둠의 심연으로 빠르게 달려간다”고 적었는데, 이는 조지아 야권과 시민들의 시위에 대한 강력한 비난으로 풀이된다.
 
한편 12월 14일 대선에서 조지아의 꿈 소속의 ‘미하일 카벨라슈빌리(Mikheil Kavelashvili)’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전체 선거인단 300명 중 225명이 참석한 선거에서 224표를 획득하여 선출되었다. 조지아 의회는 새로운 의회 첫 회기를 마쳤으며, 대통령 취임식도 12월 29일에 거행되었다. 카벨라슈빌리 당선인은 조지아의 가치와 전통을 포기하는 대가로 EU에 가입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발언하며, 국가의 핵심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EU와의 통합을 추진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EU는 조지아에 대한 경고 조치로 관용여권 소지자에 대해 비자 면제 입국 허용을 중단하는 결정을 내렸다.
 
동유럽에서 펼쳐지는 서방과 러시아의 대리전
전문가들은 EU 가입을 둘러싼 갈등이 사실상 서방과 러시아의 대리전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또한 조지아의 총선 결과가 동유럽 구소련 국가들에 대한 EU의 영향력 감소를 의미한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조지아뿐만 아니라 2024년 9월 20일 몰도바 대선 1차 투표에서도 친서방 성향의 마이아 산두(Maia Sandu) 대통령이 과반 득표에 실패했는데, 이는 동유럽에서 EU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조지아는 친러시아와 친서방 세력 간의 극심한 대립 상태에 있다. EU는 "조지아로 가는 문은 여전히 열려 있으며, EU 가입 경로로의 복귀는 조지아 지도부의 결정에 달려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코바히제 총리는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에 대한 엄중 처벌을 경고하며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지아의 미래 진로를 둘러싼 갈등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2024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여 2025년 1월 20일 제47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 정책은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며, 동유럽 및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감소하였다. 이러한 미국의 외교 기조는 조지아의 외교 정책과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미국의 외교적 지원 감소는 조지아의 EU 가입 노력과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가중시킬 수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 또한, 미국의 대외 원조 및 투자 감소는 조지아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조지아는 현재 국내 정치적 갈등과 국제 정세 변화 속에서 국가 발전 노선을 재정립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은 경제 및 외교 정책에 복합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 각주
1) 뉴스1, “친러 여당이 승리한 조지아 총선 '부정시위' 논란에 수만명 시위”, https://m.news.nate.com/view/20241029n15454?utm_source=chatgpt.com, 2024.10.29
2) Civil Georgia, “Deeper Look | Foreign Agents Registration Act”, https://civil.ge/archives/667118, 20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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