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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르바이잔, 조지아, 아르메니아가 소재한 남코카서스는 지정학으로 큰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본고는 핵심 에너지 회랑으로서 남코카서스가 지닌 지정학적 중요성에 초점을 맞추어 지역∙세계 강국 사이의 경쟁, 그리고 역내 국가들 간에 진행 중인 분쟁이 에너지 안보 및 국가의 안정성에 주는 영향을 분석하고자 한다. 지정학적 경쟁관계의 부활,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투자 확대, 중국 등 신흥 강국의 영향력 신장 등 최근의 주요 이슈에 더해 남오세티야(South Ossetia), 압하지야(Abkhazia), 나고르노-카라바흐(Nagorno-Karabakh) 분쟁과 역내 국가들에 대한 러시아의 견고한 영향력 등의 요소를 고려해 남코카서스의 현재 상황을 종합적으로 조망해 보기로 한다.
남코카서스 국가들에 큰 영향력을 갖는 주요 사안으로는, 우선 중국의 일대일로가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은 중앙아시아와 남코카서스를 중국과 전 세계를 연결하는 에너지∙수송 분야의 핵심 허브로 삼고자 한다. 한편 2022년에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지정학적 위협을 재점화하고 기존 에너지 공급망의 취약성을 드러내면서 국제적으로 엄청난 파급효과를 일으켰고, 유럽연합(EU)은 에너지 공급망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대안으로 남코카서스, 그 중에서도 특히 아제르바이잔을 고려하게 되었다. EU는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에너지 공급원을 다변화하고 대러 의존도를 낮춤으로써 에너지 안보와 지정학적 회복력을 강화하고자 한다. 또한 총선을 앞둔 조지아의 선거 동향, 제29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 개최국인 아제르바이잔의 정책 동향, 아르메니아의 국내 정치 동향도 서방 진영과 러시아의 오랜 각축장이었던 남코카서스의 역학관계에 변화를 야기할 수 있다. 다음에서 분석해 볼 국제 정세의 현안은 남코카서스가 외부 압력에 취약한 상태에 있다는 점, 그리고 해당 지역을 둘러싼 지정학 관계의 미래와 에너지 안보 문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남코카서스의 전략∙지정학적 중요성
소련의 붕괴를 계기로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한 남코카서스 지역 역내 국가들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연결점으로서 매우 큰 지정학적 중요성을 지닌다. 이 지역은 한편으로 EU의 유럽근린정책(ENP: European Neighbourhood Policy)이나 동방 파트너십(Eastern Partnership)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유럽과의 전략적 연계를 추진해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견고한 러시아의 영향력이 서방측의 구상과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복잡한 이해관계에 노출되기도 한다. 러시아는 역사, 문화, 군사적 수단을 동원해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남코카서스의 안보 및 지정학적 측면에서 존재감을 유지하고자 한다.
이외에 역내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국가로는 이란, 튀르키예 등이 있으며, 이 중 이란은 역사적 연결고리와 지리적 인접성을 바탕으로 남코카서스에서 경제 파트너십이나 안보협력을 추진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특히 이란은 역내에서 생산되는 에너지의 대외 공급로 역할을 담당할 잠재력을 지닌 국가라는 점에서 에너지 분야에서 큰 중요성을 지닌다.1) 한편 유럽과 아시아의 교차점이라는 전략적 입지를 보유한 신흥 강국 튀르키예는 트랜스 아나톨리아 천연가스 파이프라인(TANAP: Trans Anatolian Natural Gas Pipeline)을 비롯한 지역 차원의 에너지 구상에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경제적 연결성 심화, 지역 안정화 지원, 분쟁 중재와 같은 수단을 통해 남코카서스 등지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강화하고자 한다. 튀르키예는 TANAP이나 트랜스 아드리아 파이프라인(TAP: Trans Adriatic Pipeline) 등 동방과 서방을 연결하는 에너지 공급로가 지나는 에너지 수송의 핵심 허브로서, 유라시아 전체의 경제역학이나 지정학 전략에도 큰 영향을 준다.
에너지 및 인프라 네트워크 구축 노력
중앙아시아와 남코카서스 간에는 에너지 협력의 무한한 잠재력이 존재한다. 이는 역내 국가들의 경제 체력을 제고하고 국제적 영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중요한 요소로, 현재는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튀르키예, 카자흐스탄이 참여한 카스피해 횡단 동-서-중앙회랑(Trans-Caspian East-West-Middle Corridor, 이하 ‘중앙회랑’) 협정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2023년에는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카자흐스탄의 합작 철도회사 출범, 트빌리시 도로포럼(Tbilisi Road Forum)에서의 물류협정 체결, 중앙회랑 개발에 관한 조지아와 카자흐스탄의 10월 협정 체결 등으로 지역 간 수송역량 신장의 주요 전기가 될 중앙회랑 사업이 더욱 탄력을 받게 되었다. 남코카서스 소재국들은 TAP, TANAP, 중앙회랑을 비롯한 에너지 사업을 바탕으로 에너지 허브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이러한 에너지 합작사업은 외부 세력 의존도 축소, 에너지 안보 강화, 지정학적 입지 견고화, 통일성과 영향력을 지닌 지역 블록 형성에 기여하게 된다.2)
현존 에너지 인프라 및 수송 네트워크
남코카서스는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에너지 네트워크의 요충지이다. 위에서 소개한 TAP나 TANAP를 포괄하는 남부가스회랑(Southern Gas Corridor)은3) 카스피해 인근에서 생산된 천연가스를 유럽까지 운송하는 수단으로서 유럽이 가스 공급원을 다변화해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4) <그림 1>은 TAP과 TANAP, 남코카서스 파이프라인(SCP: South Caucasus Pipeline)을 연결하는 남부가스회랑의 경로를 보여준다.

TAP과 TANAP은 최근 수년간 높은 수준의 에너지 수송 실적을 올렸다. 이 중 그리스-튀르키예 국경선에서 튀르키예 -조지아 국경선으로 이어지는 TANAP의 경우 연간 설계 수송량이 160억 입방미터(㎥)이고, 실수송량은 2022년에 100억㎥, 2023년에 120억㎥ 를 기록한 후 2024년에는 유럽에서의 가스 수요 증가로 최대 수송량인 160억㎥ 를 달성할 전망이다. 다음으로 남부가스회랑의 마지막 구간으로서 그리스-튀르키예 국경선에서 이탈리아로 이어지는 TAP의 설계 수송량은 현재 연간 100억㎥ 이지만, 이 수치는 미래에 200억㎥ 수준으로 확대될 수 있다. TAP의 연간 실수송량은 2022년에 80억㎥, 2023년에 95억㎥ 였으며, 2024년에는 설계용량인 100억㎥ 까지 늘어날 가능성이 점쳐진다.
남코카서스 지역에는 전 세계로 에너지를 공급하는 데 필수적인 대규모 에너지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 그 중에서도 에너지 부문의 주요 행위자인 아제르바이잔은 1일당 120만 배럴의 수송량을 지닌 바쿠-트빌리시-제이한(BTC: Baku-Tbilisi-Ceyhan, 2006년 개통) 파이프라인을 통해 석유를, 그리고 연간 설계 수송량 70억㎥ 규모의 SCP를 시작점으로 하는 남부가스회랑을 통해 천연가스를 각각 수출하고 있다. 아울러 조지아 또한 바쿠-숩사(Baku-Supsa) 파이프라인(1999년 개통, 1일당 수송량 14만 5,000배럴)과 BTC 파이프라인이 지나는 에너지 운송의 요충지이다.5)
아제르바이잔산 석유를 가장 많이 구입하는 5개국은 이탈리아, 튀르키예, 이스라엘, 인도, 독일 순이다. 이탈리아의 경우 에너지에 대한 전략적 수요가 크고 아제르바이잔산 에너지 공급이 상대적으로 수월하며, 튀르키예는 아제르바이잔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데다 무역관계도 활발하다. 이어 이스라엘, 인도, 독일도 아제르바이잔산 석유 수입을 통해 에너지 공급 안정화나 에너지 수입원 다변화 효과를 누리고 있다. 다음으로 아제르바이잔의 천연가스 수출 대상국 순위에서는 TANAP으로 연결된 튀르키예가 1위, TAP로 연결된 이탈리아가 2위,6) 그리고 에너지 공급원 다변화와 대러 가스 의존도 축소를 목표로 하는 그리스와 불가리아가 3, 4위에 올랐다. 또한 아제르바이잔산 에너지 수출의 경로로 활용되는 조지아도 대체로 국내 소비용으로 천연가스를 수입하며 5위를 기록했다.
역내 분쟁이 지역 안정성 및 에너지 안보에 미치는 악영향
남코카서스는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에너지 수송 허브로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지만, 오랜 기간 이어진 역내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그 중에서도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둘러싼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분쟁은 지역의 안정성과 에너지 안보에 악영향을 미치는 핵심 이슈이다. 2020년에 발발한 양국 간 전쟁은 BTC 파이프라인의 정상 가동에 큰 위협이 되었고, 안정적인 에너지 운송 경로로 입지를 굳히는 데에 장해가 되었다. 이에 더해 사르상(Sarsang) 저수지를 비롯한 수자원 통제권 관련 분쟁이 격화되면서 아제르바이잔 내 일부 지역의 물 공급이 위협받고 지역 안정성이 저해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7)
러시아는 조지아 영토인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를 점령하고 이를 지정학적 영향력 유지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는 조지아와의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에너지 가격을 조정해 천연가스 가격의 변동을 유도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이는 남코카서스의 안정성을 저해하고 조지아의 독립적 에너지∙경제성장 정책 추진을 가로막는다. 이 사례는 무역 및 에너지 부문의 대러 의존이 각국에 취약성을 안겨준다는 문제점을 보여준다. 한편 조지아는 러시아의 비호를 받는 분리주의 지역의 존재 때문에 해외 투자 유치나 에너지 인프라 구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EU의 에너지 허브로 도약한 남코카서스
남코카서스는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중대 계기로 EU의 핵심 에너지 허브로 부상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의 에너지 환경에 일대 변혁을 야기하면서 대러 에너지 의존도 축소와 대안적 에너지원 발굴의 필요성을 일깨워주었고, 이 과정에서 아제르바이잔이 주요 에너지 파트너로 주목받으면서 남코카서스가 유럽의 에너지 안보를 위한 대안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아제르바이잔의 전략적 중요성 증대를 확인할 수 있었던 계기 중 하나는 2022년 7월에 열렸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EU 집행위원장과 일함 알리예프(Ilham Aliyev) 아제르바이잔 대통령 사이의 정상회담이다.8) 이 회담에서 양 정상은 아제르바이잔산 천연가스의 유럽 수출 확대를 논의하고 유럽의 에너지 공급원 다변화 과정에서 아제르바이잔의 역할을 강조했으며, 회담 이후 채택된 양해각서는 아제르바이잔산 천연가스의 EU 수출량을 2027년까지 2배로 늘린다는 내용을 담으면서 유럽에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하고자 하는 아제르바이잔의 의지를 드러냈다. 상기 정상회담 이후로도 유럽과 아제르바이잔은 에너지 파트너십 심화를 위한 구체적 조치를 취해왔다. 일례로 2022년 12월에는 아제르바이잔과 헝가리 간에 사상 최초로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생산된 전력 공급 계약이 체결되었는데, 이는 아제르바이잔이 단순한 에너지 공급에 그치지 않고EU의 에너지 전환 목표에 맞추어 녹색 에너지 구상을 진전시키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2022 년 이후 EU는 러시아 에너지 부문에 제재를 가하고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아제르바이잔을 대안적 공급원으로 선택했고, 이 과정에서 남부가스회랑은 러시아를 거치지 않고 아제르바이잔산 천연가스를 유럽으로 직접 수송하면서 EU 가맹국들의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9)
아제르바이잔이 이처럼 유럽의 믿음직한 에너지 파트너로 등극할 수 있었던 데에는 몇 가지 배경이 존재한다. 첫째, 풍부한 천연가스 매장량과 전략적 입지가 유럽으로의 에너지 수송에 적합하다. 둘째, 안정된 정치환경과 능동적 에너지 정책이 유럽 파트너들과의 신뢰∙협력관계 구축을 도왔다. 이러한 요소들을 바탕으로 아제르바이잔은 BTC 파이프라인이나 TANAP 등 주요 에너지 사업에 참여하면서 지역 에너지 인프라의 중핵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한편 조지아 또한 아제르바이잔산 에너지를 유럽으로 수송하는 주요 경로로서, 자국의 전략적 입지를 바탕으로 남부 가스회랑 등 역내 사업에 협력하면서 남코카서스가 핵심 에너지 회랑으로서의 위상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조지아의 참여는 에너지 자원의 원활한 수송을 도와 역내 안정화 및 에너지 안보 강화에도 기여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의 유럽 정세는 아제르바이잔을 위시한 남코카서스가 유럽의 에너지 지평에서 중심적 행위자로 등극하는 계기가 되었다. 개전 이후 수립된 여러 전략구상과 파트너십은 유럽의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고 지속가능 에너지로의 이행을 진전시키는 과정에서 남코카서스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에너지 분야 파트너로서 특히 각광받는 아제르바이잔의 사례는 남코카서스가 유럽으로의 안정적 이고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책임지는 주요 에너지 회랑으로서 활약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결론
남코카서스에 위치한 국가들은 이란, 러시아, 튀르키예 등 세계∙지역 강국들이 만들어낸 복잡한 지정학적 환경에 놓여있다. 또한 나고르노-카라바흐나 조지아의 분리독립 영토 등 분쟁지역에서의 전략적 이익을 보유한 러시아는 해당 지역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역의 안정화와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여러 강국들 사이에서의 균형외교가 필수적이며, 남코카서스의 미래 전망은 협력외교와 전략적 연계를 통해 기회요소는 극대화하면서 지정학적 리스크를 완화하려는 노력의 성패에 달려있다.
한편 지역의 에너지 안보나 지정학적 안정성에 기여하는 TAP나 TANAP과 같은 대규모 인프라 사업들은 남코카서스가 동방과 서방을 연결하는 에너지 회랑으로서 지닌 전략적 중요성을 보여준다. 남코카서스가 앞으로도 각국 이익의 균형 잡힌 조율, 에너지 및 경제협력 진전, 인프라 네트워크 개선 등의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핵심 수송 허브로서 더욱 발전할 가능성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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