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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언어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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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프롤로그
1.언어와 사고
2.언어와 인식
3.언어와 문화
4.언어분석과 성향
5.삶에서의 언어의 역할
6.언어와 치료
에필로그
참고문헌




프롤로그

은유만큼 영향력 있는 언어적 장치는 거의 없다. 우리 언어는 은유로 가득 차 있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예를 들어, 물리 선생님이 원자가 본질적으로 태양계와 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고 설명해 주시면, 우리는 그 물질을 훨씬 더 잘 상상할 수 있다. 은유는 우리가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각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이는 한 가지 실험으로 증명되었다. 참가자들은 범죄 증가로 어려움을 겪는 작은 마을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읽었다. 두 그룹에게 작은 은유적 차이를 두고, 같은 이야기를 읽게 했다. 첫 번째 그룹에서는 도시가 범죄라는 괴물에 시달리고, 두 번째 그룹에서는 범죄라는 바이러스에 시달린다. 그런 다음 참가자들에게 가상의 도시에서 범죄를 방지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물었다. 그 결과, 괴물 그룹은 경찰력 증강과 더 엄격한 처벌을 권고한 반면, 바이러스 그룹은 빈곤 감소와 교육 강화를 권고했다. 여기서는 단 하나의 단어가 변화를 가져왔다. 분명히, 여기의 작은 은유는 특정한 연관성의 사슬을 움직이게 했다. 우리가 은유를 통해 이해하는 특히 추상적인 개념은 시간이다. 시간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거의 항상 공간적 비교에 의지한다. 독일어로 "기간"이라는 말을 쓰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휴일이 길거나 짧다고 말하는데, 마치 거리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은유적 연결은 모든 언어에서 동일하게 적용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서양에서는 사람들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시간이 흐른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사람들이 책을 읽는 방향이 왼쪽에서 오른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위에서 아래로 글을 쓰는 중국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마지막 주와 다음 주는 없지만, 상위 주와 하위 주는 있다. 우리의 문화와 언어는 은유를 사용하여 시간과 같은 것을 상상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1.언어와 사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만약 셀 수 없다면 어떨까 상상해보라. 숫자에 대한 단어가 전혀 없을 것이다. 아직도 사과 8개와 9개를 구별할 수 있나요? 답을 찾기 위한 탐색은 우리를 아마존 지역의 고립된 소규모 부족인 피다하족으로 이끌었다.35년 전, 선교사이자 언어학자인 다니엘 에버렛은 작은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브라질 정글에 있는 이 고립된 사람들을 찾아갔다. 그는 그들의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몇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피다하족은 셀 수 없다. 그들은 모든 양을 나타내는 단어 하나를 가지고 있는데, 그 단어는 강조점에 따라 상당히 많거나 그렇지 않음을 의미한다. 피다하족은 에버렛이 셀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에게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8개월간 수업을 받았지만, 그 중 누구도 10까지 셀 수 없었다. 이는 8과 9라는 단어를 모르면 사과 8개와 9개를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언가에 대한 단어가 없다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 생각할 수 없다. 언어가 우리의 사고를 결정한다는 이론은 최근 경험적으로 뒷받침되는 경우가 점점 더 늘고 있다. 이 가정을 처음 내놓은 사람은 언어학자 에드워드 사피어와 벤저민 리 워프였는데, 이것이 이 가정을 사피어-워프 가설이라고도 부르는 이유이다. 그들은 다양한 아메리카 원주민의 언어를 공부했고, 또한 눈을 나타내는 매우 다양한 단어를 가진 이누이트의 비교적 잘 알려진 예를 인용한 사람들도 그들이다. 이를 통해 그들은 이누이트족이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눈(snow)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니카라과의 청각 장애인 그룹을 대상으로 한 몇 가지 흥미로운 실험도 있다. 언어를 늦게 배우는 사람, 이 경우 특별한 수화 언어를 배우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공감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어린 시절에 언어적 자극을 충분히 받지 못하면 특정한 정신적 능력이 발달하지 못하고 나중에 따라잡을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도 노력하면 인지할 수는 있다. 19세기 말, 우리 조상이 인종을 구별하지 않는다고 계속 믿었던 토착주의자들은 결국 희망을 잃었다. 1898년, 토레스 해협 탐험대가 시작되어 호주와 파푸아뉴기니 사이의 여러 섬을 탐험했다. 영국의 인류학자 윌리엄 호스 리버스도 이 탐험에 참여했다. 이 여행을 통해 그는 색깔에 대한 단어가 거의 없는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은 색깔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그는 머레이 섬 주민들을 대상으로 몇 가지 실험을 실시했다. 그들은 색상 개념이 모호했다. 예를 들어, 그들은 빨간색, 분홍색, 갈색의 모든 것에 마마마맘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분명히 이 색깔들을 서로 구별할 수 있다. 리버스는 그들에게 다양한 색깔의 양모실을 주고, 색깔이 같은 양모실을 서로 맞춰 보라고 했다. 모든 참가자는 빨간색에서 빨간색으로, 갈색에서 갈색으로, 분홍색에서 분홍색으로 아무 문제 없이 분류할 수 있었다. 이 모든 실이 분명히 마마마맘 색으로 칠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요. 이런 현상은 결코 멀리 떨어져 있거나 고립된 섬 주민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유럽 ​​중부 지역에서도 다양한 언어에서 색깔을 나타내는 단어가 더 많거나 적은 경우가 흔하다. 예를 들어 러시아에서는 밝은 파란색과 진한 파란색을 나타내는 완전히 다른 두 가지 단어가 있다. 하지만 두 색을 모두 파란색이라고 부르는 우리조차도 진한 남색과 밝은 하늘색을 구분할 수 있다. 그러니 뭔가를 표현할 단어가 없다고 해서 우리가 그것을 인식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니까 일리아드의 호머는 아마도 푸른색 물체를 많이 볼 수 있었겠지만, 그는 그 색깔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언어는 우리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데, 그 이유는 언어가 우리에게 특정한 것을 표현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1930년대에 언어학자들 사이에서 또 다른 혁명이 일어났다. 토론은 더 이상 언어의 차이가 문화나 자연에 의해 결정되는지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질문이 등장했다. 우리의 언어가 우리의 사고방식을 결정하는가? 이 질문은 두 언어학자 에드워드 사피어와 벤저민 리 울프가 제기했다. 두 사람은 북미 원주민의 언어를 연구했다. 그들은 모국어인 독일어와 몇 가지 흥미로운 차이점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밴쿠버 섬의 주민들은 '돌'이라는 명사를 동사로 사용했다. 직역하면 "Steinen"과 같은 뜻이며 "떨어지다"는 뜻이다. 돌이 떨어지는 것과 똑같다. 이러한 발견과 다른 발견을 바탕으로 사피어와 울프는 언어적 상대성과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밴쿠버 섬 주민들에게 돌과 바위는 서로 다른 것이지만, 우리에게는 오직 하나뿐이다. 비도 비슷하다. 우리와 영국인들은 단순히 "비가 온다"라고 말하는 반면, 예를 들어 이스라엘인들은 "비가 내리고 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두 언어학자는 약간 지나친 선을 긋는다. 서로 다른 언어가 사물을 다르게 표현한다고 해서 우리가 사물을 다르게 인식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사람도 독일 사람 못지않게 비에 젖는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문법적 이유로 제공해야 하는 세부 사항이다.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언급해야 할 것도 있다. 즉, 언어의 의미를 일치시키거나 묘사 방식의 차이보다, 해당 언어의 통화 구성이 적용되는 정보 범주가 우리의 사고 습관, 즉 어떤 정보에 주목하고 그것을 어떻게 분류하는지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우주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도 우리의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 언어가 우리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예는 공간적 방향에 대한 우리의 언어이다. 오랫동안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개념인 앞, 뒤, 왼쪽과 오른쪽이 어디인지는 모든 아이가 늦어도 초등학교 때 배웠다. 가장 가까운 슈퍼마켓에 가는 방법도 우리에게는 매우 명확하다. 첫 번째 거리는 왼쪽, 두 번째 거리는 오른쪽, 신호등에서 직진하세요. 하지만 최초의 연구자들이 호주의 원주민 부족이 사용하는 구기메티르어를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이 모든 사실은 더 이상 명확하지 않게 되었다. 이 언어에는 앞, 뒤, 오른쪽, 왼쪽을 나타내는 단어가 없다. 그 대신, 이 사람들은 주요 방위와의 모든 공간적 관계를 표현한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식사를 한다면, 한 사람은 왼쪽에, 다른 한 사람은 오른쪽에 앉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은 북쪽에, 다른 한 사람은 남쪽에 앉는 것이다. 그들이 먹는 국수는 슈퍼마켓의 북동쪽 선반에 있었다. 언어적 차이가 이렇게 크기 때문에 구기메티르족이 우리와는 주변 환경을 다르게 인식하는 것은 논리적이다. 반면에 그들은 언제나 어느 방향인지 정확하게 알려주는 매우 강력한 내면 나침반을 가지고 있다. 다음, 그들의 세계는 실제로 우리 세계와 조금 다르게 구성되어 있는 것 같다. 이것은 세 개의 이미지를 포함하는 실험을 통해 입증되었다. 한 그림에서는 집의 바로 왼쪽이나 북쪽에 서 있는 소녀를 볼 수 있다. 다른 한편,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나무가 왼쪽에도 있지만, 여기서는 나무가 집 남쪽에 위치하도록 시야를 180도 돌렸다. 세 번째 사진에서는 소녀만 보여주고 실험 대상자들에게 나무를 그리라고 했더니, 놀랍게도 유럽인들은 소녀의 왼쪽에 나무를 그렸고, 원주민들은 오른쪽에 나무를 그렸다. 실험 결과, 유럽인들은 소녀의 시점이나 그림을 보는 자신의 시점을 기준으로 '다른'이라는 위치를 사용하는 것(자기중심적 공간 기준)으로 해석한다. 반면에, 특정 소수 집단은 아마도 최초의 본 사건에서는 나무의 절대 위치(예: '남쪽')나 고정된 환경 기준(절대적/타자중심적 공간 기준)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소녀가 어느 쪽 방향을 보든은 원래는 '남쪽' 방향으로 끌기 위해 의도한 것이다. 이 결과는 우리가 사용하는 문화가 공간을 인식하고 현실을 구성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즉, 언어에 따라 세상을 이해하는 기준이 스스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2.언어와 인식

언어는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벤저민 리 워프는 언어가 우리의 사고뿐만 아니라 인식과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확신했다. 어느 정도까지 이 논문은 새로운 연구와 조사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언어는 우리가 세상의 어떤 면을 더 강하게 인식하고 어떤 면을 무시하는지를 결정한다. 예를 들어, 호주의 원주민 부족인 구이-메티르족은 왼쪽, 오른쪽, 앞과 같은 공간적 위치를 나타내는 단어가 없다. 그들은 북쪽 발치에 개미가 앉아 있다고 하며, 책도 앞뒤로 돌리는 대신 동서로 돌린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은 항상 주요 방위와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있다. 언어학자 스티븐 레빈슨에 따르면, 그들은 일종의 자기만의 감각을 발달시켰다고 한다. 그는 한밤중에 몇 시간 동안 좌우로, 그리고 원을 그리며 운전해 보면서 이를 시험했다. 그들은 언제나 북쪽이 정확히 어디인지 알고 있었다. 언어는 또한 우리가 특정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러시아인은 파란색의 다양한 음영을 기억하고 번개같이 빠른 속도로 구별하는 데 특히 능숙하다. 이는 밝은 파란색과 진한 파란색을 나타내는 두 가지 완전히 다른 단어가 있기 때문이다. 독일어에서는 주로 세 가지 문법적 성별과 그에 따른 할당에 따라 학습이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독일어에서는 키(key)가 남성형인 반면, 스페인어에서는 키가 여성형이다. 이는 열쇠에 대한 우리의 인상에 영향을 미친다. 테스트에 따르면 독일인들은 남성명사인 열쇠를 단단하고, 금속성이고, 톱니모양이라고 묘사하는 반면, 스페인인들은 여성명사인 열쇠를 작고, 반짝이고, 예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연관성을 테스트하기는 복잡하지만, 부정할 수는 없다. 또한, 언어는 우리의 문화를 반영한다. 학교에서 독일어 수업을 기억하나요? 거기서 Angst와 Zeitgeist라는 단어를 배웠을 때도 놀랐나요? 어떤 의미는 너무 복잡해서 그냥 번역하기보다는 다른 언어에서 단어를 빌리는 것이 더 낫다. 이는 언어가 언제나 우리 자신의 문화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특히 두드러지는 분야 중 하나가 색상이다. 각 문화권마다 색상을 다르게 인식하는 것 같다. 이는 해당 언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오랫동안 알려져 왔다. 최초로 매우 포괄적인 증거를 제시한 사람은 영국의 학자 윌리엄 에드워드 글래드스톤이다. 1858년에 그는 고대 시인 호메로스의 작품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연구했다. 글래드스톤은 호머가 색깔을 나타내는 어떤 단어를 사용했는지 분석했다. 그의 조사 결과는 놀라웠다. 고대 그리스인의 세계는 주로 검정, 흰색, 회색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였다. 호머와 그의 동시대 사람들에게는 색깔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예를 들어, 다양한 꽃이 피는 봄 초원을 묘사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꽃의 색깔을 언급할 것이다. 반면 호머는 밝은 색과 어두운 색의 꽃이 있는 초원에 대해 썼다. 그다지 생생한 내용은 아니지만 당시 독자들에게는 아주 평범한 일이었다. 그 결과는 정량적으로도 명확했다. 예를 들어, 호머는 검은색을 뜻하는 멜라스(melas)라는 단어를 170회 사용했지만, 노란색을 뜻하는 크산토스(xanthos)는 겨우 10회만 사용했다. 그리고 이것은 결코 호머가 생각해 낸 시적 속임수가 아니었다. 우리는 모든 고대 문헌에서 같은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글래드스톤은 이러한 차이의 원인이 고대 그리스에서 색상을 차별화하지 않은 인식 때문이라고 의심했다. 그 당시에는 인공색소가 거의 없었다. 바다와 하늘은 대부분 파랗지만, 파란 눈이나 파란 꽃은 거의 없었고, 청바지나 파란 수채화는 더더욱 없었다. 호머가 '파란색'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언어는 언제나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문화와 인식을 반영한다는 것은 매우 설득력 있는 증거이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은 왜 색깔에 그렇게 적은 가치를 두었을까? 그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볼 수 없었을까?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색깔을 구분하는 능력이 부족했다면, 아마도 그들이 색깔에 대해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질문을 처음 제기한 사람은 독일 언어학자 라자루스 가이거였다. 글래드스톤의 글을 읽고 난 후, 그는 호머뿐만 아니라 성경이나 인도 베다 경과 같은 매우 오래된 텍스트도 오늘날 우리와는 매우 다르게 색상을 다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연구를 계속했고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다양한 색상을 나타내는 단어는 전 세계 모든 문화에서 특정한 순서로 발전했다. 처음에는 빛, 어둠, 검은색, 흰색을 나타내는 단어가 있었다. 나중에 빨간색이 추가되었고, 이어서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보라색이 추가되었다. 예를 들어, 이는 더 노란 녹색인 흰 와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분명히 파란색인 블랙베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세히 보면 완전히 갈색인 붉은 사슴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이로 인해 두 가지 논제가 생겨났다. 색상 인식은 지난 몇 세기 동안 해부학적으로만 발달했고 우리 조상은 사실상 색맹이었거나, 우리는 항상 색상을 볼 수 있었지만 최근 역사에 들어서서야 색상이 오늘날처럼 중요해졌다. 언어학자들은 두 진영으로 나뉘었다. 토착주의자들은 첫 번째 이론을 믿었고, 문화주의자들은 두 번째 이론을 믿었다. 글래드스톤과 다른 사람들은 토착주의자들 가운데 있었지만, 문화주의자들 역시 그들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주장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청금석을 물려받은 고대 이전의 미케네 등 다양한 문화가 있었다. 이 돌을 특별하게 만드는 유일한 점은 밝은 파란색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볼 수 없다면 왜 이 특정한 돌을 선택했을까? 장밋빛 언어 안경을 통해 우리의 언어는 또한 우리가 색상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결정한다. 앞에서 우리는 언어가 우리의 색상 인식을 어떻게 반영하는지 살펴보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우리의 색상 인식을 바꾸었다. 실제로 색깔이 우리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는 어느 정도 우리의 언어에 따라 달라진다. 이를 위해 캘리포니아주 버클리 대학의 폴 K.와 윌리스 캠튼은 1984년에 매우 간단한 실험을 수행했다. 그들은 녹색-파란색 범위에서 각각 다른 색깔의 플라스틱 칩 3개를 가지고 있었고, 피험자들에게 색깔과 맞지 않는 칩을 선택하라고 했다. 영어 원어민들은 항상 같은 칩을 선택했다. 그들은 두 개가 파란색이고 하나는 녹색에 가깝다고 생각했으며, 녹색에 가까운 색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왜 이 제품을 특별히 선택했느냐는 질문에 그들은 다른 제품과 전혀 달라 보인다고 답했다. 모국어가 멕시코 타라우마라어인 참가자들과는 대조적이다. 이 언어에서는 파란색과 초록색의 구별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느 칩이 다른 칩과 일치하지 않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언어는 우리의 뇌가 작동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2006년 폴 K.가 이와 관련하여 실험을 실시했다. 이는 우리의 좌뇌 반구가 언어와 우시야의 시각적 인식을 모두 담당한다는 사실에 기초한다. 참가자들에게 화면의 X를 보라고 요청했다. 녹색-파란색 사각형이 X 주위에 배열되었다. 사각형 중 하나의 색깔이 약간 달랐다. 실험 대상자들은 색상이 화면의 오른쪽에 있을 때, 즉 언어와 관련된 뇌의 반쪽에서 인식될 때 다른 색상을 더 빨리 인식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언어는 우리의 사고에 여러 가지 영향을 끼친다. 성별, 공간 인식, 색상은 우리가 언어에 따라 세상과 주변 사람들을 인식하는 방식의 세 가지 예일 뿐이다.


3.언어와 문화

우리가 색깔에 대해 사용하는 단어는 자연과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 문화주의자들이 승리했다. 우리의 색깔 단어는 우리의 시각 능력이 아니라 생활 방식에 의해 결정된다. 라자루스 가이거가 원래 질문했던, 색깔 단어가 왜 정확히 특정한 순서로 발전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완전히 잊혀졌다. 그 질문은 마침내 100년 후에야 대답을 얻었다. 1969년에 인류학자 브렌트 버린과 언어학자 폴 케이는 '색상 용어 - 보편성과 진화'라는 책을 출판했다. 그들은 이를 통해 색상 개념의 발전이 문화와 자연 모두의 영향을 받는 고유한 논리를 따른다는 것을 보여준다. 빛과 어둠은 모든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낮에는 볼 수 있지만 밤에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언어에 나타나는 다음 색상은 빨간색이다. 빨간색은 피를 상징하고 따라서 위험을 의미하므로 이 색상을 표현하는 단어가 있는 것이 실용적이고 중요하다. 그게 설명의 자연스러운 부분이다. 하지만 빨간색은 문화적으로 좋은 주장을 펼칠 수도 있다. 꽃이나 다양한 과일 등 빨간색 물건이 많이 있다. 이렇게 하면 예를 들어 파란색 염료보다 빨간색 염료를 생산하는 것이 더 쉬워진다. 따라서 모든 언어에서 빨간색을 뜻하는 단어는 덜 자주 등장하는 색깔을 뜻하는 단어보다 일찍 발달했다. 하지만 우리가 무지개에서 보는 색깔은 서로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서로 섞여 있다. 그러므로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서로 다른 지점에 선을 긋는 것은 매우 정상적인 일이다. 러시아는 밝은 파란색과 진한 파란색 사이에 선을 그었다. 머레이 제도의 주민들은 빨간색, 갈색, 분홍색을 같은 상자에 넣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우리가 다른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 우리가 사물을 다르게 인식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 언어의 복잡성은 우리 문화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우리는 언어가, 우리가 색상을 인식하는 방식을 반영한다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언어에는 우리 문화에 대해 말해주는 측면이 더 많다. 여기에는 문법의 복잡성을 포함한 여러 가지 사항이 포함된다. 기본적으로 모든 언어는 복잡하지만, 모두가 똑같이 복잡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글자가 더 많은 언어나 과거 시제가 더 많은 언어 중 어느 것이 더 복잡한지 말하기는 어렵다. 이로 인해 언어 전체의 복잡성을 비교하는 것이 어렵다. 그러나 언어의 특정 영역에서 이 둘을 비교해 보면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러한 분야 중 하나는 형태론, 즉 개별 단어의 구조를 다루는 분야이다. 1992년, 언어학자 리비어 퍼킨스는 복잡한 사회일수록 단어가 더 간단한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이유는 규모가 크고 차별화된 사회에서는 우리와 공통점이 거의 없는 사람들, 예를 들어 우리와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나 우리와 다른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동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단어가 가능한 한 간단하고 보편적이어야 한다. 이처럼 거대하고 복잡한 사회의 가장 좋은 예는 지구 전체이다. 인류의 대부분은 영어를 사용하기로 동의했지만,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의 영어보다 훨씬 간단한 형태의 영어는 훨씬 많은 청중을 대상으로 만들어졌다. 반대로, 작고 동질적인 사회에서는 매우 복잡한 단어가 발달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단어의 의미 중 많은 부분이 이미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 둘은 그곳으로 돌아갔다"라는 문장은 낯선 사람에게는 별로 의미가 없을지 몰라도, 하루 종일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에게는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거기" 또는 "둘"과 같은 정보는 사람, 장소, 사건 또는 시간을 나타낸다. 이러한 것들이 소규모 문화권의 일반적인 지식에 속하는 경우, 종종 단어 구조로 흘러들어 예를 들어 특정 단어의 어미가 된다. 이것이 소규모 사회에서 외부인이 배우기 어려운 복잡한 단어가 흔히 사용되는 이유이다.


4.언어분석과 성향

단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드러낸다. 그래서 우리의 모국어는 우리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우리가 피다하르어를 할 줄 안다면 숫자를 잘 셀 수 없을 것이고, 러시아어를 할 줄 안다면 파란색의 음영을 잘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어는 우리의 성격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드러낸다. 이제 컴퓨터는 언어 분석을 사용해 사람에 대해 많은 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 예를 들어, SciWare라는 회사의 PreScire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만약 여러분이 이 프로그램에 일상생활에 대한 내용을 8분 동안 말하면, 이 프로그램은 해당 텍스트에 알고리즘을 적용하여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분석을 내놓는다. PreScire는 우리의 성별과 나이를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는지, 호기심이 많은지 내성적인지 등의 정보도 인식한다. 예를 들어, 남성은 사물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기 때문에 기사를 더 많이 사용하는 반면, 여성은 사람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한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다양한 분야에서 매우 유용할 수 있다. 한 가지 응용 프로그램은 글쓰기 치료를 담당하는 심리학자 제임스 페네베이커가 발견했다. 그는 일기에 '나', '나의', '너', '그', '우리의' 등 다양한 대명사를 자주 사용하는 환자들이 치료가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그들이 사물을 처리할 때 관점을 더 자주 바꾸기 때문이다. 언어 분석 프로그램 덕분에 심리치료적으로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는 특정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의 행동을 평가하고자 하는 정보 기관에도 매우 유망하다. 최근 미국의 주요 정보 기관들이 이 분야에 대한 연구 경연 대회를 시작한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또한 우리는 언어를 분석하고 의식적으로 사용함으로써 현실을 적극적이고 책임감 있게 형성할 수 있다. 작가 요아힘 샤퍼-수코멜은 이러한 목적을 위해 연관어원학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즉, 단어의 의미는 의성어에서 본능적으로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중독과 검색이라는 단어는 연관이 있는 것 같다. 두 단어를 구별하는 글자는 단 하나뿐이다. 샤퍼-수코멜은 고전적 어원에서 중독과 탐색은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중독은 시첸(sichen)에서 유래했지만 중독자는 분명히 탐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관 언어 분석의 관점에서 본다면, 중독자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라. 언어에 대한 감각이 좋으면 우리 삶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으므로 언어는 삶을 실제로 파악하여 사물을 구체적이고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준다. "Begreifen"이라는 단어에는 "reifen"이라는 단어도 포함되어 있다. 샤퍼-수코멜은 이를 인간과 언어의 성숙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신호로 여겼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다고 느끼는 사람은 "Verletzt"의 "Letzt" 음절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부상은 종종 누군가가 소외감을 느끼고 더 이상 지역 사회의 안정을 지원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발생한다. 마지막 예로, 기억하다라는 단어를 살펴봅시다. 기억할 때, 우리는 시선을 내면으로 돌려 과거를 돌아본다. 반면에 영어의 'remember'에 해당하는 단어는 우리가 전체의 일부임을 상기시켜준다. 그러니 잊지 마라! 단어의 연상적 힘은 말한 내용 뒤에 어떤 감정적 세계와 갈망이 숨겨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문구에 주의하라. 주변 사람들에게 당신이 자주 사용하는 문구나 용어가 있는지 물어보는 것도 좋다. 그런 다음 연관 언어 분석을 사용하여 단서를 검색할 수 있다. 당신의 진술은 어떤 생각과 감정을 반영하고 있나요? 우리는 언어가 우리의 생각, 태도, 행동에 여러 가지 면에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이미 살펴보았다. 이런 인식은 정치계에 오래 전부터 자리 잡았으며, 유권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해 언어를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정치계에서 흔한 일이다. 주요 전략 중 하나는 은폐이다. 상황이 불편해질 때마다 정치인들은 갑자기 전혀 이해할 수 없고 다가가기 힘든 언어를 사용한다. 그러면 그들은 복잡한 문장과 흉측한 단어를 사용하는 걸 좋아하는데, 예를 들어 대테러보충법 같은 게 있다. 이런 단어가 잔뜩 들어간 글은 내용이 복잡하든 아니든, 첫 번째 읽기에서는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 게다가 모든 고위 정치인은 인터뷰에서 민감한 질문에 이해하기 어렵고 구속력이 없는 답변을 하도록 훈련받는다. 인터뷰어는 대개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고, 따라서 자신이 무언가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그런 짓을 해도 괜찮다. 이러한 전략은 청취자나 독자가 멍청하다고 느끼게 한 뒤 다른 주제에 집중하도록 고안되었다. 이는 특별히 민주적인 태도는 아니다. 또 다른, 훨씬 더 중요한 전략은 특정한 은유를 통해 유권자의 의견을 조작하는 것이다. 우리의 주의 지속 시간이 짧아지고 매일 쏟아지는 정보의 양이 늘어나면서 개별 키워드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오늘날에는 아무도 연설 전체를 듣지 않는다. 우리는 종종 헤드라인이나 트윗만 읽는다. 단어는 무엇보다도 감정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왜냐하면 단어는 우리가 투표지 앞에 섰을 때 우리의 펜을 인도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난민의 물결과 사람들의 유입은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마치 자연재해와 같아서 우리는 높은 댐으로 우리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불행히도 우리는 이런 은유에 대해 면역성을 가질 수 없다. 우리의 뇌는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으로 반응한다. 불행히도 정치적 수사의 대부분은 우리가 벗어나기 힘든 세뇌의 한 형태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올바른 말을 사용하면 우리는 많은 긍정적인 일을 이룰 수 있다. 


5.삶에서의 언어의 역할

가끔 무력감, 압도감,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적이 있나요? 다시 말해, 등이 벽에 기대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나요? 당신이 이 이미지를 어떻게 인식하고 미래에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드러난다. 한 사람은 그 상황이 너무 위협적이라 얼어붙거나, 포기하거나, 말을 잃는 반면, 다른 사람은 그 상황에서 힘을 얻는다. 한 사람은 궁지에 몰린 기분이 든다면, 탈출은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반면, 다른이는 이 상황에서 이득을 얻을 수 있다. 벽에 등을 기대고 있으면 뒤에서 공격을 받을 수 없으니까. 내 뒤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어. 나는 보호받고 있어. 모든 것이 내 앞에 놓여 있다. 그것은 새로운 것의 시작이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겉보기에 복잡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가능성을 인식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인생에서 자신만의 작은 연극을 즐긴다. 우리의 말은 우리의 정신적, 영적 배경을 운반하는 당나귀와 같이 유연하다. 배경은 필요에 따라 앞뒤로 움직일 수 있는 장식적이고 움직이는 벽이며 시뮬레이션된 현실을 표현한다. 그게 무슨 뜻인가?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환경에서 살아간다. 관점에 따라 무장 반대파 인물을 테러리스트 또는 자유의 투사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배경을 만들고, 우리 삶의 과정에 따라 그것을 발전시킨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갇히게 되면 문제가 된다. 인생에서 항상 같은 곡만 연주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이런 갇힌 느낌은 종종 부정적인 감정적 상황에서 발견된다. 이는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문자 그대로 특정 진술에 갇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 항상 나야? 아무도 내 말을 듣지 않아. 아니면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거야. 고전에서 또한 "보세요, 저는 훌륭하지 않나요?"라는 진술도 있다. 이는 배우들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는 자동화된 부정적 배경에 속한다. 그러니 주의를 기울이라. 우리는 우리의 언어적 배경을 인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일상생활에서 너무나 자주 발견되는 이러한 언어 설정의 몇 가지 예를 살펴봅시다. 영원히 양심적인 근로자가 감옥에서 일해야 하고 그의 양심이 그에게 얽매여 있다면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는 사람은 자신을 괴롭히는 일을 처리할 수 있으며, 그럴 때에만 진정으로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러면 부모가 "내 자식에게 애착이 있다"고 말할 때 실제로 무엇을 기대하는가? 이것을 시각적으로 상상해 보라. 불쌍한 아이에게 그런 의존은 견딜 수 없을 뿐이다. 즉, 플러그인 애착은 아이의 클러스터성을 지원하고 성장을 지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건강한 애착 관계는 아이의 고유한 특성과 성장을 지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부모가 자신의 기대나 한계를 아이에게 강요할 때, 이는 부모 자신의 심리적 부담을 아이에게 전가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반면에, 부모가 자신의 내면적 과제에 직면할 준비가 되었을 때, 아이는 그 과정을 통해 함께 성장할 기회를 얻게 된다. 한편, 당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언어적 배경이 어떤 장르에 속하는지 알아내보라. 배경 풍경을 돋보이게 하는 소리는 시끄러운 소리인가, 아니면 조용한 소리인가? 이건 독백인가, 대화인가? 이에 대해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어떤 성과를 보이나요? 당신은 어떻게 보이나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적어 두면 도움이 된다. 당신이 종종 자신을 외부인으로 여긴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이러한 부정적인 배경에 대해 생각해 보고, 그 안에서 긍정적인 점을 찾아보기 바란다. 외부인의 입장에서는 행동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있을까? 여기서 무엇을 배울 수 있나요? 그리고 이 상황이 어쩌면 기회가 될 수도 있을까? 이런 고려사항은 자신의 창의력을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과 세상이 우리를 인식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요소는 우리의 감정적 배경을 적극적으로 형성하는 것이다. 긍정적인 말과 생각은 우리에게 힘을 준다. 부정적인 단어와 배경은 우리를 지치게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의 목표는 부정적인 배경을 재해석하는 것이어야 한다. 현실은 가변적이고 역동적이다. 현실에서 '일'이라는 단어가 발견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시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우리는 현실을 평가하고, 판단하고, 해석해서 의견을 형성한다. "Meinung"의 "mein"이라는 음절은 여기에 내가 생각하는 세상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언어는 우리의 인식을 여과하는 매우 효과적인 필터이다. 예를 들어, 우리의 말은 감각적 경험을 표현하지만, 그것은 단지 실제 경험의 표현일 뿐이다. 이는 해석의 여지를 많이 열어준다. 메뉴가 식당에서 제공하는 음식에 대한 설명일 뿐인 것처럼, 우리의 말은 현실에 대한 해석일 뿐이다. 우리가 이 차이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우리는 세상에 대한 우리만의 개별적인 관점을 창조할 기회를 얻게 된다. 우리는 그것을 손에 넣었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적 배경을 재연하고 우리의 생각에 따라 현실을 형성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우리의 관점으로 모든 것을 손에 쥔다. 예를 들어, 문제는 상황 자체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의 매우 개인적인 배경을 통해서, 그것이 참조 프레임을 형성한다. 우리는 우리 삶의 배경을 스스로 창조하는 존재로서 무수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독립적인 기업가로서 잠재력을 실현하고, 삶의 예술가로서 전 세계를 여행하며, 정규직에서 안정감을 느끼며 힘을 얻을 수 있다. 자신의 가능성을 못보는 사람들은 자신이나 세상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능성이라는 단어는 사실 'like'에서 유래되었다. 가능성은 공간을 제공한다. 사랑과 따뜻함을 뜻하는 긍정적인 용어이다. 열은 팽창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성장을 의미한다. 반면에 불가능성은 억압적이며, 차갑고 답답함을 의미한다. 긴장감은 어원적으로 두려움의 기원이다. 가능성과 불가능성이 반대인 것처럼 두려움과 사랑도 반대이다. 사랑은 그 자체 안에서 존재하며, 흐르고 확장된다. 그녀는 서두르지 않고 가볍고 떠다닌다. 당신의 뱃속에 있는 유명한 나비(butterflies in one's stomach)를 생각해 보라. 두려움은 불안과 초조함을 의미한다. 여기가 모든 것이 하나로 모이는 곳이다. 질병과 마찬가지로 종종 파도처럼 찾아온다. 우리가 두려워한다면, 우리는 제때에 있지 못하고, 오히려 시간을 쫓으며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무언가를 성취할 수 없거나 달성할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러므로 두려움은 외부적 결정과 연관되는 반면, 사랑은 자기결정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은 무슨 색깔을 가지고 있을까? 사랑은 밝고 다채롭다. 두려움은 어둡고 무색하거나 회색이어서 잔인하다. 여기서 사랑과 두려움의 특성을 살펴보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궁금하나요? 원칙적으로 우리의 모든 감정은 이 두 가지 기본적인 감정으로 돌아간다. 사랑 때문에 하지 않는 일은 두려움 때문에 하게 된다. 그러니 당신의 인생 시나리오 중 어떤 것을 사랑으로 만들었고, 어떤 것을 두려움으로 만들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일상생활 속의 어떤 행동이나 표현에서 사랑과 두려움을 알아볼 수 있나요? 이러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면, 우리가 부정적인 감정을 생각 속에 너무 많은 공간으로 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일을 하도록 스스로를 프로그램했고, 우리의 가능성과 삶의 긍정적인 면에 대해 점점 더 눈이 멀어버렸다. '부정적'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negare'에서 유래되었는데, 이는 부정한다는 뜻이다. 삶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갖는 것은 자신의 잠재력을 부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개인적인 결정은 사랑이나 두려움으로 인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사랑을 선택하라. 우리의 인생 극장에는 훌륭한 무대 장치, 최고의 배우들, 환상적인 메이크업이 갖춰져 있다. 마스크가 없다면 좋은 연극이 될 수 없잖아요. 라틴어 "페르소나"가 실제로는 "가면"을 뜻한다는 걸 알고 있었나요? 가면은 사람의 특징을 과장하여 본질적인 내용에 초점을 맞추게 한다. 우리는 가면 뒤에 숨을 수 있으며, 동시에 이 가면은 개인의 가능성을 나타낸다. 가면과 역할은 우리의 옷이기 때문이다. 라틴어 "investire"는 "옷을 입히다"로 번역되며, 현재 용법상에서는 예를 들어 공직에 취임함으로써 우리의 재능과 가능성에 투자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클래드clad"라는 단어는 "클레이clay"에서 유래되었고, 우리는 밀기울(wheat bran)을 끈적끈적한 덩어리로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기쁨과 명랑함으로 가면을 바꾸기보다는 가면을 고수할 위험이 있다. 성인들은 종종 가면에 갇혀 있다. 씁쓸한 심각성의 가면을 쓰고 있거나, 불쌍한 피해자의 가면을 쓰고 있거나, 어쨌든 아이들은 가면을 쓰고 옷차림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어른이 되면 우리의 성격은 종종 너무 많은 "겹"으로 가득 차게 된다. 마치 누군가가 화장품을 여러 겹이나 바르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니 마스크를 더 자주 교체하라. 아침에 거울을 보라. 현재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요? 당신은 피곤함을 느끼나요, 아니면 기쁨을 느끼나요? 긍정적인 미소를 지으라. 당신은 당신의 친절한 가면 덕분에 기쁨이 실제로 당신 안에 퍼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미소를 지으며 밖에서도 마스크를 바꾸는 연습을 할 수 있다. 자신의 필요와 목표에 가장 잘 맞는 마스크를 의식적으로 착용하라. 우리는 언어의 가면 뒤에 숨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어떻게든", "어딘가", "언젠가"와 같은 단어는 아무것도 하기로 결심하지 않고 문제를 피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하지만 조심하라! 문제는 덮어둘 수 없다. 그리스어 "problema"는 원래 "제시된"을 의미한다. 과거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끊임없이 우리에게 제기되지만, 그들은 그것을 덮어두곤 한다. 


6.언어와 치료

외국어를 배우면 우리는 더 똑똑해지고, 더 사교적이고, 더 건강해진다. 그래서 말은 우리의 의견을 주장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다른 언어로 말할 때 다른 장점도 가져다준다. 두 가지 언어를 구사하는 것에는 많은 장점이 있다. 다국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은 한 가지 언어만 구사하는 사람들보다 정신적으로 더 건강하고, 사고방식이 유연하며, 멀티태스킹에 더 능숙하다. 두 번째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우리의 뇌가 더 오랫동안 건강을 유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다국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의 경우 알츠하이머병은 평균 4~5년 늦게 진단된다. 또 다른 언어는 우리의 행동 레퍼토리를 확장시킨다. 예를 들어, 수줍은 사람 중에는 외국어를 할 때 호기심 많고 열린 마음으로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는 사람이 많다. 두 번째 언어는 우리에게 그다지 감정적으로 뿌리내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잡한 내용을 두 번째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더 쉽고, 이를 감정적으로 극복하는 데도 더 수월하다. 따라서 이중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은 심리적 위기를 겪을 때 더 쉽게 대처할 수 있다. 외국어는 우리에게 어느 정도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두 개 이상의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은 종종 자신에 대해 두 가지 이상의 문화적 개념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영어에서는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가 더 많은 반면, 러시아어나 중국어에서는 다른 사람이나 공동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반면에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더 외향적이다. 언어를 바꾸면 관련된 문화적 개념도 자동으로 교환된다. 그 외에도 외국어는 정말 아름답고, 우리가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된다. 모든 언어에는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고유한 아름다움과 시가 있다. 말은 우리가 질병을 극복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일기는 어려운 상황에 처한 많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동반자이자 큰 도움이 된다. 마음속에 있는 것을 말하거나 글로 쓰면 걱정이 덜어진다. 단어는 어떻게 이런 일을 하는가? 단어에는 치료 효과가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예를 들어, 제임스 페네베이커가 개발한 글쓰기 치료법이 있다. 그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자신의 걱정을 적어 두는 사람들은 독감이나 다른 감염에 걸릴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제는 치료법을 글로 쓰면 상처가 더 빨리 낫고 예방 접종의 효과도 높아질 것이라는 신념도 나오고 있다. 그래서 심장마비 환자의 회복이 빨라지고, 천식과 관절염이 완화되는 데에는 심리적인 영향도 크다. 청소년을 우울증으로부터 보호하고 중독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우리 뇌에서 편도체라는 기관은 감정적으로 사건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한 연구에서는 환자들이 심각한 부상을 입은 아이와 같은 불안한 이미지를 보도록 했다. 이런 이미지는 편도체를 활성화시키지만, 피험자들에게 이미지를 설명하도록 요청했을 때 두려움, 연민,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편도체의 활동이 감소했다. 그래서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그것을 감정적인 수준에서 이성적인 수준으로 옮기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런 치료효과는 일상생활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시험이나 공연 전에 정말 긴장된다면, 10분 정도 앉아서 두려움을 적어보는 게 도움이 된다. 이런 식으로 공부하는 학생들은 시험에서 더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으로 증명되었다. 일기는 우리가 일상생활을 더 나은 방향으로, 더 긍정적으로 처리하는 데 도움이 되며, 무엇보다 심각한 감정적 문제가 생기는 것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같은 이야기를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 관점을 바꾸고, 그로 인해 정신적으로 진보해야 한다. 특히 전체 이야기를 다른 관점에서 말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언어가 당신을 아프게 할 때, 즉 만약 당신이 끊임없이 눈물의 골짜기에 있고, 일상생활에서 불평이 끊이지 않는다면, 조심해야 한다. 이런 부정적인 정신 태도는 결국 신체적 질병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만성 허리 통증을 겪고 있다. 그들이 짊어져야 할 짐은 흔히 문자 그대로 일상에서 겪는 무거운 짐이다.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무엇이 자신을 그토록 괴롭히고 견딜 수 없게 만드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그리고 삶의 도전을 두려워하는 사람, 예를 들어 시험을 두려워하는 사람, 또는 비겁한 사람으로 알려진 사람은 이러한 상황에서 종종 설사를 겪는다. 그 반대 현상은 막힘이다. 더 이상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고, 모든 것이 억제되고 있다. “내버려둘 수 없어”, “더 이상 내 자신을 표현할 수 없어”와 같은 감정이 신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두 상황 모두 건강에 해로우며, 자신의 감정 상태를 반성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언어는 또한 우리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아플 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인내심을 가져라. 영어에서는 이 역할이 더욱 명확해진다. 환자라는 단어는 아픈 사람을 지칭하며, 인내심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질병은 평온과 안정이 유지되는 휴식이 필요하다. 성과 중심 사회에서 간과되는 부분으로 우리는 아플 때 몸과 마음의 평화와 균형을 유지하는 대신, 질병에 저항하고 이를 좌절로 여긴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스스로의 적이 된다. 우리는 이런 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지만, 이런 사고방식이 치유에 도움이 된다. 그것은 우리가 다시 중심을 찾을 수 있는 수단이다. 그러면 의료 치료에서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도 연관 언어 분석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치료'라는 단어에 손이 포함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따라서 환자는 의사의 만짐을 받고, 손을 사용하여 진료를 받고 진단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적절하게도 고대 그리스어 "진단"은 "지식"과 "판단"을 의미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B-컨설팅 룸"이라고 불러야 할 상담실에 5분만 들어가도 자신을 알아본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까? 인정받지 못하는 것도 당신을 아프게 만들지만 우리는 버텨낸다. 우리의 언어는 우리를 아프게 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질병에서 벗어날 방법을 보여줄 수도 있다. 어떤 질병 증상이 계속 나타나나요? 자신의 질병을 살펴보고 그 질병의 이면에 있는 부정적인 감정과 태도를 파악해보라. 이런 식으로 질병은 치유를 향한 첫 걸음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치유는 육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영적인 것도 포함한다.


에필로그

우리는 오래된 신화에 헌신하고 싶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다음 이야기를 살펴봅시다. 아주 오래전, 신들은 인간이 우주의 힘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그 힘을 어디에 숨길지 결정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먼저 많은 권력을 책임감 있게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 신은 이 힘을 가장 높은 산에 숨기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 발견을 기대하기도 전에 산에 오를 것이란 것은 분명했다. 그래서 또 다른 신은 바다의 깊이를 암시했다. 하지만 결국 신들은 인간이 우주의 힘을 책임감 있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힘을 찾아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그러자 그들 중 가장 지혜로운 신이 말했다. 우주의 힘을 인간 자신 안에 숨기자. 그는 성숙해서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을 때만 거기서 그것을 찾을 것이다. 이것이 신들이 우주의 힘을 인간 속에 숨기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 힘은 아직도 거기에 있다. 역사를 통해 당신은 중요한 모든 것이 이미 당신 안에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당신은 단지 자신 안에서 자신의 자원을 발견해야 한다. 리소스는 원래 출처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원천은 당신 안에 있다. 여기서 당신은 에너지와 열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가 당신의 비전이 뿌리내린 곳이다. 그러니까 빠르고 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것이 아니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출처로 돌아가자. 그러면 어떻게 작동하나요? 목록을 작성하고, 우리 자신을 평가한다. 그리고 우리는 어디에서 우리 자신을 재창조하고 싶은가? 목록 다음에는 모험이 오는데, 이는 라틴어 advenire에서 유래했다. 즉, 도착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우리가 우리 자신을 찾으면 모험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위험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무언가에 도전한다는 것은 움직이는 것에서 비롯되지만,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채 무언가를 저울에 올려놓는 것에서도 비롯된다. 그게 위험이지만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행복에 필요한 모든 것이 당신 가까이에 있다는 걸 잊지 마라. 그것은 당신 안에 있다. 인생에서 성공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자동적으로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로 가는 여정에서 계속해서 넘어진다는 사실은 문제가 아니며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하지만 누워서 있는 것은 가능하다.




참고문헌

언어의 거울 속에서
가이 도이처Guy Deutscher

생각의 알파벳
스테파니 슈람 & 클라우디아 뷔스텐하겐Stefanie Schramm & Claudia Wüstenhagen

당신은 당신이 말하는 것입니다
요아킴 샤퍼-수초멜 & 클라우스 크렙스Joachim Schaffer-Suchomel & Klaus Kr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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