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5.인도
16.러시아의 지정학적 필수 요소
17.러시아의 마지막 국경 유럽
참고문헌
15.인도
인도는 1단계 사업으로 차바하르 항구의 선석(항구나 부두에서 선박이 접안(정박)하여 화물을 싣거나 내릴 수 있도록 마련된 자리)두 곳을 정비하는 데 약 8,521만 달러를 투자했다. 그러나 차바하르에서 자헤단까지 이어지는 16억 달러 규모의 철도 건설 사업은 아직 완공되지 못했다. 이 사업의 완공을 가로막는 주요 장애물은 이란에 대한 국제 정책 변화, 특히 미국의 정책 변화이다. 러시아가 제안된 핵심 국경지대로의 회랑의 효과를 인도에 설득하는 것이 더 쉬울 수도 있다. 러시아는 작년에 수출을 아시아로 전환하며 인도의 주요 공급국이 되었다. 이를 위해 러시아는 북극 항로 이용을 늘려 무르만스크에서 북해 항로를 통해 태평양을 거쳐 인도양으로 에너지를 운송하고 있다. 이는 인도 모디 총리가 2022년 9월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러시아와의 협력 강화에 적극적이라고 밝힌 이후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인도양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인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중국으로부터의 무역을 줄이기 위한 새로운 무역 협정도 추진되고 있다. 기존 안보 동맹들도 이 지역의 경제적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점점 더 이 지역을 주목하고 있다. 이는 세계 경제 전쟁에서 서방의 움직임에 대응하는 전략이자, 인도의 세계적 영향력 확대를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다. 북극 항로를 통한 무역량 증가로 인도와의 교역을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나아가 흑해 개발에 있어 인도를 파트너로 삼는 것 또한 중요한 목표이다. 하지만 인도는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양국은 호주, 일본과 함께 쿼드 안보 조약(Quad Security Pact)에 참여하고 있다. 서방과 러시아 간의 경제 전쟁이 전개되는 상황에서 델리는 주목해야 할 국가이다. 모스크바는 뉴델리를 더욱 가까이 끌어들이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인도에게 있어 이는 다른 전략적 파트너와의 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공급망, 국제 금융 네트워크 접근성, 그리고 아마도 가장 중요한 인도-태평양 안보 동맹에 미칠 수 있는 잠재적 영향을 고려해 보세요. 모스크바와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어떤 조치든 이러한 요소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16.러시아의 지정학적 필수 요소
러시아는 빈곤과 사회적 환멸에 빠졌다. 소련의 해체는 너무나 비극적이어서 오늘날까지도 러시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러시아의 지리적 특성은 가장 큰 강점이자 가장 큰 약점이다. 러시아 영토의 대부분은 북위 50도에서 70도 사이에 위치해 있다.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국가이지만, 한편으로는 러시아 전역을 정복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인구는 넓게 분포되어 있는 반면, 러시아의 중심부는 서쪽에 위치하여 유럽 강대국 및 북유럽 평원과 인접해 있다. 러시아의 지리적 특성 중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방어하기 어려운 지형이다. 대부분의 국가의 중심부와는 달리, 러시아의 중심부는 북서쪽에 위치한 중세 모스크바 대공국에 한정되어 있다. 국경을 이루는 강이나 바다, 산맥이 없다. 러시아의 국경은 중앙아시아와 그 너머 유럽 평원을 연결하는 광활한 초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평원은 튜턴 기사단부터 나치 전쟁 군사력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에 모든 것을 가져다주었다.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취약한 국경과 침략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세 단계에 걸쳐 영토를 확장해 왔다. 첫째, 침략 경로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확장하여 방어벽을 구축했다. 19세기 후반 이반 3세 치세에 서쪽으로 진출하여 프리페트 습지대에 자리를 잡았다. 이로써 러시아는 키이우 지역과 단절되었다. 또한, 이 지역은 울창한 삼림으로 덮인 기존 모스크바 공국의 자연스러운 확장이었다. 둘째, 확장 단계는 훨씬 더 공격적이고 위험했다. 19세기 중반, 러시아는 마침내 몽골 침략로를 향해 남쪽 산악 지대로 진출했다. 이 확장 과정에서 러시아는 카스피해 연안의 아스트라한, 타타르 지역, 그리고 캅카스 산맥 기슭을 군사 전초 기지로 탈바꿈시킨 그로즈니 등 전략적으로 중요한 여러 지역을 점령했다. 이로써 러시아는 캅카스 산맥 북쪽 경사면을 장악하여 어느 정도의 안보를 확보하게 되었다. 18세기, 세 번째 확장 단계는 서쪽으로부터의 최종 침략 경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표트르 대제와 예카테리나 대제의 통치 아래 러시아는 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남서쪽의 우크라이나를 정복하고 카르파티아 산맥까지 진출했다. 이로써 차르국은 러시아 제국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예카테리나 대제는 아마도 안보적 관점에서 육지 확장이 완료되면, 순전히 육지에만 의존하는 제국이 겪는 안보 및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양으로 진출할 수 있는 따뜻한 항구로 영토를 확장해야 한다는 점을 이해한 최초의 러시아 지도자였을 것이다. 그러나 남서쪽 국경의 카르파티아 산맥을 제외하면, 러시아는 진정으로 방어 가능한 국경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팽창은 외부 위협을 내부 위협으로 바꾸어 놓았다. 러시아는 너무나 빠르게 팽창했기에 제국의 결속력을 유지하는 것이 끊임없는 과제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은 완충지대를 구축하여 어느 정도의 안보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러시아는 자연적 지형에 의존하여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었다. 북극에서 공격하려는 세력은 없었고, 몽골의 침략을 늦추기 위해 삼림 지대가 이용되기도 했다. 모스크바 주변의 지리적 지형은 침략을 지연시킬 수는 있었지만 완전히 막을 수는 없게 했다. 러시아는 본질적으로 육상 강국이기 때문에 취약했다. 모스크바는 국경을 확장하는 것만으로는 영토를 늘릴 수 없었고, 러시아 영토 사이에 완충지대를 구축함으로써 안보를 확보할 수 있었다. 소련 전성기에는 모스크바가 중앙 유럽까지 뻗어 있는 광대한 완충지대를 누렸다. 수 세기 동안 러시아의 국토가 크게 변하지 않고 인구 대부분이 북서부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러시아의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인 지정학적 과제는 서쪽 국경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남쪽의 캅카스 지역도 러시아에게 두 번째로 중요한 과제였다. 러시아는 이 지역에 상당한 무력을 행사하고 현지 동맹국과 협력함으로써 분리주의 운동을 진압하고 북캅카스 지역의 무장 세력을 통제할 수 있었지만, 군사적 결속력 확보는 지속적인 과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는 제국 관리의 문제였다. 모스크바 문제는 궁극적으로 다방향적인 위협에 기인했다. 스텝 지대는 끊임없는 위협이었지만, 북유럽 평원이 천연 방어벽 역할을 한 반면, 인구가 많아 상당한 보병을 배치할 수 있는 서부 지역 역시 위협적이었다. 또한 스웨덴처럼 해군력을 이용해 모스크바 지역에 상륙 공격을 감행할 수도 있었다. 삼림 지대와 러시아의 거대한 영토는 어느 정도 방어막 역할을 했다. 완충 지대를 안전하게 유지하고 러시아 본토의 내부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가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모든 기관을 통제해야 했다. 이는 러시아가 이웃 국가들에게 공격적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자국의 기관들을 숙청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내부 기관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여 내부 권력을 공고히 하는 것이 러시아 국가의 안정을 유지하는 핵심이었다. 러시아 북부에는 인구 밀도가 매우 낮은 광활한 공터가 펼쳐져 있으며, 기후는 거주민들에게 훨씬 더 가혹하다. 러시아에는 강이 거의 없고, 있는 강조차도 대부분 서쪽으로 흐르기 때문에 국내 교통에 어려움이 있다. 러시아는 이러한 고유한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철도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이는 서부와 남부 지역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이렇게 분산된 인구를 하나로 묶고 분열의 위험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외부 세력이 국경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러시아는 광활한 영토로 인해 효율적인 교통망이 부족하여 병력 이동이 어렵고, 이로 인해 막대한 비용이 드는 대규모 상비군을 보유하게 되었다. 러시아 연방은 독립 도시부터 공화국, 자치주에 이르기까지 규모가 제각각인 85개의 연방 구성체로 이루어져 있다. 결과적으로 러시아는 지역 경제가 고도로 분권화되어 있으며, 부와 번영의 분배가 불평등하다. 기후, 교통망, 그리고 러시아의 지리적 특성은 군사력의 병참 및 배치 측면에서 국가 방어에 제약을 가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기후와 교통망이 러시아 농업에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러시아 국민이 이용할 수 있는 식량의 양은 작물 생산량과 교통망의 효율성에 따라 결정된다. 러시아에서는 농지에서 시장으로 농산물을 운송하는 것이 어려워, 농지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 인구의 식량 공급에 차질이 생긴다. 러시아는 자급자족할 만큼의 식량을 생산할 수 있지만, 농장에서 도시 중심부로 생산물을 효율적으로 운송하지 못하고 있으며, 설령 운송이 가능하더라도 높은 운송비 때문에 대다수 국민이 식량을 구매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인구는 도시 지역에 거주하고, 농촌 지역에서도 대부분 소도시 주변에 거주한다. 따라서 정복당한 사람들은 경제적 합리성에 따라 거주지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지만, 러시아 중심부로 식량을 수송해야 하는 필요성은 이러한 합리성에 반한다. 이처럼 러시아의 인구 분포는 정부에게 정치적인 문제도 야기한다. 도시의 기아를 감수할 것인지, 아니면 식량 생산 지역에 경제적 궁핍을 강요하면서까지 도시 중심부에서 식량을 시장 가격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판매하도록 명령할 것인지 선택해야 할 때, 러시아 지도자들은 역사적으로 후자를 선택해 왔다. 조셉 스탈린은 강제로 이주시켜 도시화된 산업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인 지도자의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안정적이고 강력한 러시아는 국가를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중앙 정부를 특징으로 하는 반면, 불안정한 러시아는 중앙 권력의 통제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체적으로 운영되는 약화된 행정 기구를 특징으로 한다. 러시아가 약화될 때마다 국가의 심층 구조가 붕괴되어 경제 성과가 저하되고 사회 문제가 심화되었다. 따라서 냉전 시대의 소련이 그러했듯이, 러시아 역시 이러한 상황을 겪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1990년대 러시아 제국은 경제 성장이 아닌 생존을 위한 시기였다. 대부분의 국영 기업이 헐값에 민영화되었지만, 1998년 러시아 금융 위기와 그에 따른 시위는 러시아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등장하여 파탄난 경제를 받아 정부를 재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근 2014년 크림반도 병합 이후 서방 제재가 시작됐고, 2022년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후에는 제재가 대폭 강화됐다. 이후 러시아 경제는 군수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인플레이션과 자원 의존 문제를 안게 됐다.) 새 대통령으로부터 몇 가지 개혁이 기대되고 있다. 세 차례의 정치적 봉기를 겪은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비터키계 인구가 다수를 차지하는 타지키스탄은 독립 직후부터 에모말리 라흐몬 대통령의 통치를 받아 왔으며, 7,000명의 러시아군이 주둔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지역 안보를 러시아에 가장 의존하는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중앙 아시아 국가들은 북서쪽의 옛 동맹국의 약화를 조심스럽게 지켜보는 한편, 남동쪽의 아프가니스탄 상황에 대해서도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미국이 최근 철수한 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했다.
17.러시아의 마지막 국경 유럽
유럽 국경은 러시아의 국경이며, 이 국경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카르파티아 산맥은 루마니아에서 서부 우크라이나를 거쳐 슬로바키아까지 호를 이루고 있다. 소련 시절 모스크바는 우크라이나에 있는 이 호의 중심부를 장악하고 있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드네스트르 강 너머의 평야가 서쪽으로 뻗는 통로이고, 카르파티아 산맥은 그 진출을 막는 자연 장벽이다. 반대로 루마니아 입장에서는 산맥이 방어선이지만 동쪽 평야는 무방비에 가깝다. 그래서 이 지역은 오랫동안 러시아와 루마니아(및 서방) 사이의 완충지대로 인식되어 왔다. 루마니아가 이 지역을 통제했을 당시 모스크바는 이를 러시아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했다. 모스크바가 이 지역을 장악한 후에는 러시아군이 카르파티아 산맥에 자유롭게 주둔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지역은 현재 몰도바 공화국으로서 독립국일 때, 그리고 역사적으로 1939년에서 1941년 사이 독일-러시아 동맹 기간 동안 완충지대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스크바는 루마니아로부터의 공격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다. 러시아는 북독일 공군이 이 지점 동쪽으로 삼각형 형태로 확장해 나가고 있기 때문에 이 지역을 위험하다고 여긴다. 삼각형이 넓어질수록 러시아군의 전력은 점차 약화된다. 따라서 서쪽에서 평야를 통해 진격해 오는 적군은 확장되는 지형에 부딪혀 러시아군의 전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적군은 집중 공격을 감행하여 모스크바를 향해 돌파할 수 있다. 전통적인 러시아의 두려움은 자연적인 장벽이 없는 상황에서 동쪽으로 더 진격할수록 러시아군 전선이 넓어지고 공격자에게 더 유리해진다는 것이었다. 제국 수립 이후 러시아는 나폴레옹, 빌헬름 2세, 히틀러로부터 이 축선을 따라 공격을 받았다. 빌헬름 2세는 프랑스에 집중했기 때문에 러시아로 깊숙이 진격하지는 않았지만, 나폴레옹과 히틀러는 모두 러시아를 공격하여 모스크바를 거의 함락시킬 뻔했다. 따라서 군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러시아는 북유럽 평원을 따라 세 가지 선택지를 가지고 있다. 먼저, 서쪽으로 진출해 방어선을 최대한 앞으로 밀어내서 평원이 가장 좁아지는 폴란드 일대까지 나아가 모스크바에서 최대한 먼 곳에서 적을 막는다. 평원은 서쪽으로 갈수록 좁아지기 때문에 방어하기 쉬워진다. 다음, 발트 3국,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폴란드 같은 주변 국가를 직접 통제하거나 영향권에 두어 완충지대로 삼는다. 소련의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끝으로, 서쪽 강대국과 협정이나 세력권 분할을 맺어 공격 위협 자체를 줄인다. 독소 불가침 조약 같은 사례를 들 수 있다. 나폴레옹과 히틀러 등 사후적으로는 붕괴처럼 보이지만, 공격자들은 항상 아슬아슬하게 탈출하여 주변 지역을 완전히 파괴했다. 소련 붕괴 후, 구 바르샤바 조약기구 회원국들이 서방에 합류했다. 소련의 붕괴와 그로 인한 정치적, 경제적 혼란은 1990년대 러시아를 무력화시켰다. 그러나 크렘린은 이러한 영토 확장을 유럽에 대한 전략으로 여겼다. 2000년대 초 우크라이나는 크림 산맥을 중심으로 영토를 확장해 왔다. 크림 산맥은 우크라이나 국토 면적의 거의 5%를 차지하며, 나머지 지역은 해발 평균 약 780피트(237미터)의 고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지형 덕분에 강은 우크라이나 지형의 주요 특징이 되었다. 키예프는 드네프르 강이 좁아지는 지점에 위치하며, 이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전사보다는 상인들이 정착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비옥한 토양에도 불구하고, 혹은 어쩌면 바로 그 비옥함 때문에 우크라이나는 독립 국가보다는 다른 제국이나 국가의 일부로 존재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우크라이나는 영토의 일부를 정복하고 강이나 숲을 천연 방어 시설로 활용하는 것이 용이했기 때문에 러시아와 영토를 공유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우크라이나가 소련의 지배를 받았던 시기를 언급하지만, 다른 의견으로는 이 시기가 우크라이나의 전략과 정체성에 있어 소속 문제를 핵심 요소로 만들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전쟁 전 서방 국가들은 대부분 유럽 연합 가입을 원했고, 동방 국가들은 러시아와의 긴밀한 관계를 원했다. 러시아로서는 우크라이나가 매우 중요한 국가이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처럼 우크라이나를 장악하고 정복하려는 세력에게는 우크라이나가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거의 기억과 사회경제적 현실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고려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그러나 전쟁은 러시아가 서방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미래를 확보하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 2022년, 세계는 최초의 글로벌 경제 전쟁에 돌입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지정학적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지리적, 역사적 맥락에서 러시아는 서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완충지대를 유지해야 했고, 우크라이나는 그 완충지대에 포함시켜야 할 핵심 국가였다. 모스크바는 서방의 동방 영향력, 특히 러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모스크바의 러시아 정권을 위협하는 현대적 침략으로 인식하고 있다. 푸틴은 냉전 시대에 정치 경력을 시작했으며, 당시 서방의 생활 수준이 소련보다 훨씬 높았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이러한 강력한 사회경제적 기반 덕분에 서방은 냉전에서 소련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다. 냉전 이후 동유럽 국가들이 서방과 동맹을 맺게 된 궁극적인 원동력은 바로 인간 발전과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이었다. 인간 발전(human development)은 단순한 경제성장이 아니라 소득, 건강, 교육, 자유와 선택권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서방 동맹은 군사 블록에 들어가는 일이면서 동시에 EU 시장, 투자, 제도, 이동의 자유를 얻는 길이었다. 서구와 유사한 새로 건설된 쇼핑몰에는 유럽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었고, 더 중요한 것은 가격이 저렴했다는 점이다. 적어도 주요 도시에서는 생활 수준이 서구와 비슷했다. 러시아는 에너지 시장에 진출하면서 성장했다. 2010년대 유럽 경제 위기는 모스크바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러시아는 도시와 농촌 지역 간의 격차가 여전히 컸고, 크렘린은 러시아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국내에 사회경제적 문제가 없다면 러시아 정권은 반대 세력 없이 유지될 것이고 변화할 가능성도 낮을 것이다. 복잡한 배경 속에서 크렘린은 서방에 대응하기 위해 서방이 소련을 능가하는 성공을 거두도록 만들었다. 러시아의 대응은 그들의 전략을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서유럽이 소련에 대항하는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그리고 미국의 독일이 나머지 유럽에 군사적, 경제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만들었다. 다시 말해, 미국은 독일과 프랑스의 이익이 일치하도록 해야 했다. 왜냐하면 1871년 이후 프랑스와 독일 간의 긴장 관계가 이전 전쟁의 주요 원인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은 소련과 그 체제, 그리고 동유럽의 공화국 및 위성 국가들과의 경제적, 정치적 관계도 중요하게 여겨야 했다. 소련의 부재 속에서 나토는 정치적 기능을 확장하고 동쪽으로 세력을 넓혀갔지만, 군사적 중요성은 크게 약화되었고 회원국들은 공동의 군사적 목표를 잃어버렸다. 세계화, 무역, 투자는 러시아를 포함한 모든 국가에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1990년대 초는 평화와 번영이 저절로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이것이 유럽 공동체(EU)의 설립 취지이자 명분이었다. 동독이 겪고 있던 사회경제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통일 독일은 유럽 연합의 실질적인 경제 리더가 될 잠재력을 지니고 있었다. 독일은 서유럽과 동유럽 국가 모두에게 하나의 모델이 되었다. 냉전 시대 서독이 구축한 강력한 경쟁 우위와 지리적 이점은 독일을 유럽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독일은 확대되는 공동 시장과 새로운 EU 회원국 및 EU 인접 지역의 저렴한 노동력으로부터 혜택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초 동독은 고통과 사회경제적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는 무엇에 자금을 지원하고 무엇을 방치할지에 대한 결정을 신중하게 내려야 했다. 러시아의 전략과 독일과의 관계는 현재의 전쟁을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것으로 보인다. 푸틴은 서방이 냉전에서 승리하고 소련이 패배한 이유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기에, 1990년대 이후 소련이 잃어버린 것을 되찾으려면 서방과 유사한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러시아가 안정된 상태였기에 푸틴은 러시아에 집중할 수 있었다. 러시아 국경에 인접한 국가들이 서방과 동맹을 맺고 서방의 영향력 아래 놓이는 것을 막기 위해 러시아 지도부는 역사적으로 두 가지 주요 전술을 사용해 왔다. 첫 번째는 구소련 국가들과 군사 동맹을 맺어 러시아의 영향력을 직간접적으로 동원하는 것이다. 두 번째 전술은 더욱 정교하다. 유럽에서 편의에 따른 동맹을 구축하여 궁극적으로 범유럽 연합을 분열시키려는 것이다. 러시아는 이러한 동맹을 통해 경제적, 재정적, 기술적 이점을 얻는 동시에 주변국에 대한 서방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자 했다. 이 전략은 유럽과 유럽의 단결, 그리고 동방에 대한 영향력을 무력화할 수 있다면 유럽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제거할 수 있다는 크렘린의 생각과 일맥상통하다. 그러나 냉전 종식 후 미국이 유럽의 안보 및 에너지 정책에 대한 발언권을 잃게 되자, 러시아는 이러한 전략을 실행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다. 동시에 러시아는 냉전 경험을 통해 효과적인 동맹은 정치적, 경제적 상호 의존에 기반한 네트워크 형태를 띠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결과, 러시아는 미국이 냉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사용했던 일부 방법과 전술을 채택했다. 그는 KGB 시절 드레스덴에서 근무했다. 2000년대 초, 그는 양국 관계 개선에 직접 참여하게 되었다. 유창한 독일어 실력을 활용하여 당시 독일 총리였던 게르하르트 슈뢰더와 깊은 친분을 쌓았는데, 슈뢰더는 당시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에서 경제적 기회를 보았다. 당시 러시아는 에너지 생산국일 뿐만 아니라 독일 기술의 잠재적 시장이자 독일의 주요 투자 대상지였기 때문이다. 슈뢰더 재임 기간 동안 러시아와의 관계는 급격히 개선되었고, 에너지 파트너로서 러시아는 독일에게 특별한 이점을 제공했다. 에너지는 모든 분야에서 매우 중요했으며, 특히 천연가스는 가장 중요한 에너지 소비원이었다. 냉전 시대에 건설된 러시아의 인프라는 유럽 천연가스와 석유 소비량의 약 4분의 1을 공급했다. 이러한 의존 관계는 유럽이 정치적으로 전략적인 문제에 있어 러시아의 의견에 귀 기울이게 만들었다. 푸틴에 따르면, 슈뢰더 정부가 우크라이나 사태를 지지하지 않은 것은 궁극적으로 독일이 러시아와의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필요성 때문이었다. 즉, 슈뢰더 정부(1998~2005)는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정치 변화, 특히 2004년 오렌지 혁명 같은 사태를 적극 지지하지 않았는데, 푸틴은 그 이유를 독일이 러시아와의 관계를 유지해야 할 필요, 곧 에너지 협력 관계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총리 퇴임 직후 러시아 가스프롬 주도의 노르트 스트림에 안착한 슈뢰더는(본인이 이용당하고 있다고 보이는) 러시아의 의중대로 가스프롬이 앞장서 메르켈의 독일과 유럽을 장악하기 위해 설계되었다고 비판받은 노르트 스트림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천연가스 가격 분쟁으로 메르켈 총리 취임 후 불과 몇 달 만에 독일을 포함한 유럽으로의 러시아 가스 공급이 일시적으로 중단되기도 했다. 러시아의 에너지 공급은 유럽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정책을 지지하고 유럽 전역에서 우크라이나를 배척하도록 압력을 가하기 위한 것이었다. 석유 공급원을 다변화하고 총 수요를 줄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유럽연합은 야심찬 대체 에너지 및 에너지 절약 프로그램과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채택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러이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독일까지 이어지는 해저 파이프라인 노르드 스트림과 노보로시스크 인근에서 불가리아까지 흑해 해저를 따라 건설되는 사우스 스트림에 의존해야 했다. 유럽으로 연결되는 장거리 해저 파이프라인 건설 비용은 육상 연결 파이프라인 건설 비용의 3분의 1도 되지 않았다. 게다가 러시아는 막대한 자금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러한 프로젝트를 이윤 추구만을 염두에 두고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상업적 관점에서 러시아의 조건은 다소 황당했다. 러시아는 파이프라인 건설 기술력이 부족했지만, 유럽이 건설 비용을 부담하고 완공 후에는 소유권을 자신들이 갖겠다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유럽, 특히 독일과 대화를 시도했다. 두 프로젝트 모두에 대해 협상을 진행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었지만, 소통 채널은 구축되었다. 그리고 마침 2011년 5월, 독일 정부는 전체 프로젝트를 승인한다고 발표했다. 독일의 계획은 재생 에너지로 원자력 산업 전체를 대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경제적으로 실현 가능하지도,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했다. 원자력 발전 비용은 풍력 발전 비용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고, 태양광 발전 비용의 20분의 1에 불과하다. 따라서 10년 안에 독일의 재생 에너지 3분의 1을 대체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비용이 들었고, 명백히 실현 불가능했다. 이로 인해 독일은 다른 선택지를 고려하게 되었다. 첫 번째는 원자력에 우호적인 인구를 보유하고 있으며 독일이 원자로를 폐쇄하기 시작한 이후 원자력 에너지를 공급해 온 프랑스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원자력 발전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두 번째는 폴란드이다. 당시 폴란드의 강점은 1990년대 이후 유럽 전역에서 점진적으로 퇴출되어 온 석탄이라는 연료였다. 폴란드는 이러한 연료원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그 외에도 중요한 무역 파트너이자 외국인 투자의 원천인 러시아가 있었다. 러시아의 전략은 간단했다. 그들은 2011년까지 독일이 원자력 발전으로 공급받아 온 전력의 절반을 노르드 스트림 파이프라인으로 대체하려 했다. 이 파이프라인은 러시아와 독일 사이의 모든 경유지를 우회하며 2012년 가동될 예정이다. 노르드 스트림 2의 계획은 간단히 말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완전한 협상력을 확보하고 독일이 필요로 하는 모든 가스를 독일로 직접 공급받는 것이었다. 마치 육지 위의 흑해(유전)와 같은 것이죠. 이처럼 독일과 러시아 간의 기존 에너지 의존 관계는 서방이 현재 경제 전쟁에서 직면하고 있는 더 큰 문제의 일부일 뿐이다. 러시아산 가스가 없었다면 독일 경제는 붕괴했을 것이다. 베를린은 2024년부터 가스 공급량을 줄이기로 결정하면서 더 큰 자립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유럽의 석유 공급이나 액화천연가스(LNG) 공급에 대해서는 같은 말을 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러시아가 여전히 에너지 수출을 통해 수익을 올리고 경제를 지탱할 수 있는 이유이다.
참고문헌
Geopolitics, Geoeconomics
and Borderlands
A Study of a Changing Eurasia and Its
Implications for Europe
By Antonia Colibășan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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